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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악의적이라고? 왜? 최근 MBC와 대통령이 다투는 모양새가 TV를 통해 보여진다. 갈등이 시작된 건 지난 9월 방미 당시 윤석열대통령의 무의식적 말실수(본인은 기억이 없다하는) 장면때문이었나보다. 말실수? 그럴 수 있다. 사람이니까... 그런데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의도야 어떻든 왜 모르쇠일까? 사실 그날 난 SNS를 통해 '대통령의 욕설'이라고 떠도는 영상을 보았었는데 대통령과 국민의 힘은 MBC뉴스장면만을 콕 짚어(다른 언론에선 아무 언급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문제삼고 있더니 대통령의 동남아순방과정에서 MBC기자를 전용기에 탑승하지 못하게 했단다. 또한 전용기 내에서 친분있었다는 특정언론사 기자들과의 대화(?)해놓고 친분있는 기자들과의 사적대화여서 아무 문제 없다고 일축해버렸다. ..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확대? 내가 봉사하는 기관에 공공형 노인일자리 어르신들이 오신다. 월 30시간의 일을 하시고 받는 27만원. 소득이 많지 않으나 그나마 일자리라고 있으니 무력감이 해소되기도 하고 손주들에게 사탕이라도 쥐어줄 수 있으니 뿌듯하다고 하신다. 빠르게 노령화사회로 변해가는 이 나라에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님께서도 작년까지 그 27만원을 벌기 위해 바삐 움직이시기도 했다. 얼마 안되는 돈을 굳이 벌러 나가셔야하냐고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공공형 노인일자리, 월소득 27만원이 뭐 그리 대수냐고 집에서 편히 계시라고 해도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던 어머님! 손에 쥐어주는 27만원의 돈보다 밖에 나가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좋으셨을 소중한 시간..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환경은? 뒤늦게 깨닫고 실천하게 된 생태적인 삶. 학교에서 교육의 방향을 생태로 이끌어가고자했으나 함께 하고자 하는 동료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작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주변 여건때문인지 동료나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생태교육을 할 수 있었다. 동지역의 대규모 학교로 옮겨온 후에도 생태교육을 이어가고자했으나 교과서적인 지식만을 중요시하는 동료와 학부모로 인해 난관에 부딪힌 일이 많다. 학력에 대한 고정관념은 교과서적인 지식을 통해 시험성적을 높게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방향에 의해 유초등교육의 방향이 결정되어버리는 특성을 생각하면 반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에게 그 미래의 행복을 위해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물려줘..
꼰대가 되겠다는 제자들 15년 전 졸업시킨 제자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가르칠 당시 아이들에게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글쓰기를 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했던 일이 있다. 한 녀석이 20년 뒤 호호백발이 된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학창시절을 되새기고 있을 거라고 친구들 앞에서 글을 발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그 글을 썼던 그 제자는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다. 글쓰는 솜씨가 제법 있었기에 나름 예뻐했던 아이였는데 몇 년 전인가 직장 내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그 제자와 같이 어울리던 다른 제자들은 뒤늦게 나의 명퇴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이 퇴근한 후 어둠이 깔릴 무렵 만나게 되었다. 저녁먹을 장소를 선뜻 정하지 못해 공터..
할로윈의 안타까운 참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참사로 희생된 모든 분들께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새벽 세시 반, 반쪽이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태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며 서울에 있는 딸아이의 무사를 확인해보란다. 딸아이는 감기걸려서 아프기도 하지만 이태원같은 곳에 안간다고 걱정말라고 했는데 반쪽은 잠을 못 이뤘다. 그 시각에 아들, 딸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했는데 답이 없다며 초조해했다. 야심한 밤에 잠들어있으니 답이 없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하는 나에게 딸의 성향이 사람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하기에 안 갔을거라 믿고 있는 나에게 무심하다며 반쪽이 투덜거렸다. 난 잠결이라 사실 심각하게 생각지 못했다. 아침뉴스를 보니 참사는 심각했다. 밤새 걱정한 반쪽때문에 눈을 뜨저마..
5개월만에 촛불을 들게 하다니... http://omn.kr/21aar 시청역에서 숭례문까지 촛불 가득..."민생파괴 정권 그만" [현장]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집회... 용산 대통령실까지 행진 www.ohmynews.com 퇴직 후 마을공동체 활동을 준비하면서 시어머님의 병환으로 정신없이 살아오기도 했지만 이전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살아왔던 탓에 촛불집회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또다시 집회가 시작되었을까? 2008년 이명박정권 초기에 수입산 쇠고기에 대한 의혹들로 불거졌던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대하는 당시 정권의 반응은 명박산성. 그럼에도 보수정권은 정권을 이어갔다. 박근혜탄핵까지 10년 가까이. 박근혜탄핵을 열망하는 촛불집회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문재..
다시 찾은 방포항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일교차도 점점 벌어져가는 가을, 다시 한 번 방포항으로 차박을... 처음 방문했을 때, 아무 준비없이 갔기에 반쪽이 재도전을 제안한 것이다. 어린시절, 친정아버지의 근무지였던 탓에 격포에서 자라면서 항구에 나가놀았던 기억때문인지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고 물놀이를 좋아했던 나와 달리 바다로의 여행을 싫어하는 반쪽이 유일하게 바다로 가고 싶어할 땐 가장 큰 목적이 해루질이다. 지난 번에 우연히 방문했던 방포항에서 사람들이 해루질하는 모습을 보더니 즐거운 체험기회를 놓쳤다고 준비없이 찾아갔던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계약직 업무가 종료되고 열흘의 여유시간이 생겨서 다시 찾아간 방포. 이번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방향을 잡았다.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태안으로 가는 길이자 아이들과 바다여행을 할..
1920년 10월 21일은 청산리전투 시작했던 날 아침뉴스를 보는데 오늘 청산리전투가 시작된 날이란다. 항일운동을 가르치면서 홍범도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대첩이라고까지 불리워진 치열했던 청산리 전투. 일제로부터 자주독립을 꿈꾸며 목숨바치면서까지 격렬하게 항일운동을 펼쳐왔던 독립투사분들께 보답은 못할 망정 최근 국회부의장이면서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어찌된 일일까? "일본은 조선과 전쟁한 적 없다"라고...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글귀까지 끌어들였다해서 관련 내용을 찾아봤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369164?sid=104 한용운 왜곡한 정진석, '반성'은 이렇게 읽는 거다 [김종성의 '히, 스토리'] 국민의힘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