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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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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수술 결국 반려견 수술을 진행했다. 며칠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않고 축 늘어져있더니 먹은 것도 없이 토해내고 염증을 쏟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초음파검사를 통해 사진을 확인해보니 중성화수술을 해주지 않은 탓에 자궁에 염증이 생겨 반려견 몸 곳곳에 염증이 퍼져나가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동안 아픈 내색 하나 없기에 아무 것도 몰랐다. 쓰러져 일어서지를 못하는 반려견을 안고 근처 병원으로 뛰었다. 병원에선 한시가 급하다며 곧 수술을 해야한다고 말하는데 아직 딸아이를 보지 못한 반려견을 수술실로 들여보내기가 망설여졌다. 노령이라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확률도 높으니 딸아이는 만나고 들여보내겠다 싶어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밤늦게 도착한 딸아이를 보더니 반려견이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하룻밤을 딸아이..
반려견 수술을 앞두고 2009년 5월, 태어난 지 47일만에 우리 가족이 된 반려견. 말티즈 믹스견인 은비는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하얀 털실뭉치같은 귀여운 강아지였다. 동물병원 유리창으로 나와 딸을 바라보며 데려가달라고 말하는 듯하여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무렵, 우리 집엔 이미 반려묘 두 마리가 있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여 집을 떠난 후 딸은 혼자 외롭다며 반려묘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밖에 나가기를 즐겨하던 반려묘는 이미 십 여년 전에 우리 집을 떠나버렸다. 어쨌든 우리 가족으로 들어온 지 14년이 지난 반려견. 사람나이로 치면 84세의 고령인 반려견은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물론 이전에도 아픈 곳이 있긴 했지만 이번엔 심각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니 곳곳에 염증들이 발견되었다. 가장 심각한 염증..
꼰대가 되어가려나 손자가 태어났다. 생각지도 않게 진짜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물론 머리가 하얗게 물들어가고 있으니 할머니가 맞긴 한데 실제로 손자가 생기다니 ㅎㅎ 나름 아이들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기를 낳고 기르는 아들며느리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안사돈이나 나 역시 육아를 해봤음에도 뭐 하나 묻지않고 인터넷에 의지해서 아이를 키운다.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정보에 의지해서 아이를 키운다. 고부갈등이랄까 싶어 아들에게 조용히 궁금한 일은 물어본다. 부모에게는 전문성을 못 느껴서 병원이나 조리원, 블로그 등에 의지해 육아를 하다보니 몇몇은 잘못된 정보같은데 부모에게 묻지도 않으니 내심 서운하다 그래서 난 여전히 꼰대인가 싶다. 1년 정도 육아휴직하면 며느리의 친정엄마가 아이를..
꼰대가 되겠다는 제자들 15년 전 졸업시킨 제자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가르칠 당시 아이들에게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글쓰기를 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했던 일이 있다. 한 녀석이 20년 뒤 호호백발이 된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학창시절을 되새기고 있을 거라고 친구들 앞에서 글을 발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론 그 글을 썼던 그 제자는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다. 글쓰는 솜씨가 제법 있었기에 나름 예뻐했던 아이였는데 몇 년 전인가 직장 내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그 제자와 같이 어울리던 다른 제자들은 뒤늦게 나의 명퇴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이 퇴근한 후 어둠이 깔릴 무렵 만나게 되었다. 저녁먹을 장소를 선뜻 정하지 못해 공터..
살며 노래하며 어려서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언제부턴가 목소리가 걸걸해져서 지금은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못하지만 ㅎㅎ 한가해진 탓인지 요즘은 오래 전 불렀던 노랫말들이 입 안에서 맴돈다. 어려서불렀던 동요, 중고등학교 합창부활동하면서 불렀던 가곡, 그리고 대학시절 캠퍼스낭만을 즐기며 불렀던 가요 , 그리고 사회생활하면서 자주 접했던 노찾사 노래 등 장르불문하고 시도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퇴직 전까지 난 내 아이들을 키우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때그때 유행하는 가요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래야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랬더니 어느 해인가 제자들이 찾아와서 노래방을 함께 갔는데 제자들이 내게 맞는 노래를 불러주더라. 최근에 관심가졌던 가요는 단연코 BTS노래였다. 운전하면서..
어머님 안 계신 추석 어머님 안 계신 이번 추석은 결혼 후 삼 십 여년 만에 내게 한가한 명절이 되었다. 결혼하고 명절때마다 손님맞이하느라 허리펼 틈 없이 상차리던 기억이 명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냈다. 술 좋아하시는 시아버님과 손님대접 잘 하기로 소문 난 시어머님때문에 명절마다 시댁으로 몰려드는 손님이 정말 많았다. 찾아오는 손님마다 새롭게 상을 차려드려야한다는 어머님 지론에 따라 앉아계시던 손님들은 새로오는 손님과 함께 새 상을 받아 계속 먹거리를 드시곤 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어머님 손맛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명절마다 허리굽히기(인사때문이 아니라 상차림때문에) 운동한다고 반쪽에게 투덜거리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친정과 너무 다른 분위기였던 터라 적응이 힘들기도 ..
선택 어머님께선 빨리 호전되지 않는 상황에 까칠하게 병원생활을 하고 계신단다. 농삿일로 잔뼈가 굵어오신 어머님께선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만큼 왕성하게 일을 하셨다. 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하시는 어머님.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보다 일잘한다며 스스로를 뿌듯해하셨다. 이런 자신감은 반쪽도 똑닮았다. 그렇게 지내시던 분이 갑작스럽게 병원에 누워계시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어하셔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빨리 낫게 해달라고 매일 호소하신단다. 아침일찍 일어나 정갈하게 화장하고 나서야 일을 시작하셨던 분이라 병원에 들어가니 같은 병실에 이런저런 병명으로 누워있는 환자들을 보면서도 불만이 쌓이신다. 사실 다인실에 입원하면 여러 종류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함께 있어야하는데 깔끔하신 성격에 그런 상황조차도 불편하게..
호사다마라 아들며느리의 임신으로 마음이 들떠있었는데 갑작스런 시어머님의 병원입원이 결정되어 분주한 8월의 첫주였다. 딸아이 이사시켜주고 아들며느리 축하파티해주고 그렇게 계획했던 8월 첫 주. 8월이 되기 전, 시어머님께서는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농작물수확을 멈추지 못하고 무리하시더니 결국 걷지못할 만큼 다리 상태가 나빠졌다. 작년에 척추를 부딪혀 다치신 이후에 병원에서는 무리한 일을 하지 말라 권유했으나 평생을 농사로 잔뼈가 굵으신 터라 일을 놓고는 못사는 성격인 어머님께선 자식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걷지못할 상태가 되어서도 가을농사하실 걱정부터 하시니 난감하다. 반쪽과 남매들이 논의하여 병원입원을 결정했고 우리내외는 당분간 시골집을 지켜야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8월 첫 주는 정신없이 보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