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발표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 무상급식 등의 복지정책 확대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혁신교육이 부진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또한 어찌된 발상일까?

현재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혁신교육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초등학생들의 행복도증진에 꽤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만족하는 혁신교육에 대해 학부모들이 신뢰하지 못하고 우려하게 되는 것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 학력증진면에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대입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중고등학교로 혁신교육이 연계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혁신교육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데 위원회에서는 어떤 근거로 초등학교에서 복지에 신경쓰느라 혁신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않는다는 지적을 했을까?  

초등학교 1,2학년을 세시까지 학교에 붙잡아 두고 놀이학교를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도시의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한 개 학년을 백명으로 보면 1,2학년이 이백명넘는 셈인데 그 많은 아이들이 놀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까? 그나마 현재 신설되고 있는 학교에는 한 학년에 한 곳 정도 놀이공간을 만들어두고는 있지만 백 여명의 학생들이 1.5칸 정도의 공간에서 모두 즐겁게 뛰어놀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저학년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놀이를 하라고 하기에는 위험요소가 많다. 교사들도 저학년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고 있다. 놀아보지 못한 세대의 학부모들과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놀이를 경험하도록 돕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교육환경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말이다.

몇 년 전 스마트교육을 하겠다며 교실마다 스마트환경을 구성한다고 엄청난 돈울 쏟아부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교실은 친환경자재를 사용하여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의견을 낸 적이 있다. 저학년이 오랜 시간 머물 돌봄교실만이라도 친환경자재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교실로 리모델링하려고 할 때, 자재를 선정하고 아이들에게 맞는 가구를 제작하려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행정의 투명성과 관리의 효율성을 이유로 조달목록에 있는 물품들로 채워야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놀이공간으로 구성해주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돌봄교실 상황도 그러니 이런 사각형의 콘크리트 일반교실에서 딱딱한 의자와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더 오랜 시간을 학교에 머물라는 발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설명자료에서 발췌)

위원회측에서는 내년에 시범학교를 선정하여 놀이공간을 마련하고 운영한 결과를 토대로 2024년 신입생부터 적용하겠다는 구상인 모양이다. 과연 어떤 학교들이 ‘(가칭) 더 놀이 학교시범학교로 선정될지 모르겠지만 이 정책이 시행되는 2024년쯤에는 충분히 빈교실이 넘쳐날 것이고 유시민작가가 청원한 것처럼 유휴교실을 돌봄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학부모들에게 홍보하듯이 도시와 농촌 구분없이 유휴교실 활용이 놀이공간으로서 충분히 마련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자체가 참 답답한 생각이다. 이미 농촌의 많은 학교들은 폐교되고 있고 고령의 노인들만 남아있는 행정자치지역들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며, 도심의 학교들은 학급당 학생 수 평균을 넘어서고 있는 실정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도시의 아이들이 농촌의 빈교실에 마련된 놀이학교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지 않는가!

지금도 1,2학년 학부모들은 고학년 수업을 위한 특별교실을 저학년 방과후 수업을 위해 내어달라고 말한다. 학교마다 모든 학생들이 골고루 사용할 수 있는 특별교실 또한 충분하지 않은데 그나마도 저학년을 위해 내어준다면 고학년이 특별교실에서 다양하게 체험하며 활동할 수 있는 교육은 교과서로만 간접체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재 초등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교실의 현황도 도시학교들에서는 고학년 학급수와 비교하면 부족한 실정일 것이다. 특히 놀이활동을 할 수 있는 강당은 고작해야 한 곳뿐일텐데...

위원회에서 제시하는 선진국 초등학생들의 세시하교 실태에 대한 근거제시는 또 어떤가? 그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는 교육내용에 대한 구체적은 언급은 생략하고 세시하교 현상만 내세우며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으니 우리도 하자는 식이다. 이런 식의 정책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늘상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보자. 아님 말고...

아이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 나라의 교육에 대한 반성과 고민을 충분히 하지는 않고 그저 남의 나라 형식을 베끼려고만 한다. 초등교육 현장에서 혁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교육을 고민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대입이라는 종착지로 가기 위해서 학력위주의 초등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기존의 평가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을 설득해내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또 이렇게 형식만 선진국 흉내를 내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입으로는 교육이 백년지대계라고 말하며 교육정책을 제대로 세우겠다고 하지만 촛불정부마저도 내세우는 정책마다 1,2년 앞을 내다보는 근시안적인 교육행정으로만 보일 뿐이니 나의 식견이 부족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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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다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최근 초등학교 1,2학년의 하교시각을 세시이후로 의무화하는 초등교육 정책을 논의 중이라고 들었다.

(이미지 출처 : 이데일리에서 퍼옴)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하는 우리나라 인구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초등학교 학생 수 감소로 인해 변화될 교육환경을 고려하여 초등교육정책을 논의 중이라는데 제시된 자료를 살펴보니 기본적인 인식부터 잘못되었지 않나 싶다.

우선,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우려하여 결혼을 하지 않거나 출산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전제가 맞는가 묻고 싶다. 이명박근혜 정권동안 청년세대는 서로에게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N포세대니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 등의 신조어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신조어들의 배경은 무엇일지 그렇게 자조적인 청년세대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일지 사람이 먼저다라며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이 정권에서 고민하고 고민하여 내놓아야할 최우선의 대책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작 내 아들딸마저도 결혼이 싫고 어떻게 키워야할지 염려스러워 아이낳는게 두렵다고 한다.

과연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공교육이 아이를 돌봐주기만 하는 것으로 저출산문제가 해결될까? 아이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이와 가족을 떼어놓는 것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면 국가가 아이를 돌보는 시기는 언제부터여야 할까?

지금도 초등학교에서는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운영하여 5시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이 있다. 어찌보면 위원회에서 제시하는 독일의 개방형 전일제 초등학교의 모습과 유사하다. 물론 모든 여성이 다 일자리를 갖게 된다면 현재의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만으로는 저학년 아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단순히 아이를 돌봐주기만 바라지는 않는다. 어떤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아이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는 최종목적을 대학입시와 취업에 두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궁극에는 아이들의 미래 삶이 윤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바램은 대학입시와 직접적인 연결이 되고 있음을 놓쳐선 안된다.

실제로 돌봄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봄교실에서 할 수 있는 교육활동들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학부모들은 돌봄교실 혜택만으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방과후학교의 교육활동도 함께 신청하다보니 돌봄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시간당 평균수는 실제 입실학생 수보다 현저히 적다. 또한 학부모들이 원하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요구는 갈수록 학교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살펴볼 때, 위원회가 제시한 세시 하교정책이 사교육 경감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가설도 잘못된 출발점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한다. 지금도 방과후학교 수업에 불만이 많은 탓에 돌봄교실이나 방과후학교가 끝난 후 늦은 시각까지 학원을 떠돌다 귀가하는 아이들이 많다. 1학년 아이가 9시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단순히 학교가 아이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또한 강남의 대치동에서 한밤중에 볼 수 있는 교통대란은 외국인들이 놀라기에 충분한 현상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학부모의 경제력이 결정하는 사교육의 격차가 사회적 삶의 격차를 불러오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그 삶의 격차는 점점 더 양극단으로 벌어지고 있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그런 격차가 초등학교 저학년 세시 하교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해소될 것이라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어떤 교육정책을 내놓아야하는지 방향성을 찾았다면 혁신교육의 선두주자였던 김상곤교육부장관이 물러나는 상황을 가져왔을까? 항상 교육문제의 해법을 대입정책을 손질하는 것에서 찾다보니 교육이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분명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토론하며 발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훨씬 더 깊이 고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발표되는 정책마다 교육주체들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빛좋은 개살구'로 그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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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상처.

1년차 새내기교사들이 첫 교직생활에 대해서 힘들어하기에 선물로 사준 책이다.

한 학기 내내 스트레스로 불만가득한 아이들과의 생활로 교사도 아프다.

 

최근 교사의 교육공무원법41조에 의한 방학 중 연수규정을 없애달라거나 아예 방학을 없애달라는 청원글이 있다고 들었다.

교육공무원법 41(연구기관 및 근무장소 외에서의 연수)에 의하면

교원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소속 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 연수기관이나 근무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해 교사 대부분은 방학 중에 자택이나 해외를 포함한 다양한 장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을 위한 연수를 받거나 마음상처의 치유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일부 관리자들은 방학 중에 교사들을 학교로 불러내고 싶어서 관리자 자신들의 근무일과 행정직원들의 근무를 핑계로 교사의 방학 중 41조 연수에 대해 교직원간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교사로서 학기 중 휴가를 마음껏 쓸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형평성도 고려해달라고 항변했다.

교사로서 학기 중에 휴가를 쓰기엔 상당한 부담이 따르기에 대부분의 경우 학기 중 휴가를 쓰지 못한다. 복무규정에 의해 경력에 따라 연가일수가 정해져 있어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게 되어있지만 학기 중에는 학생들에게 미칠 학습권피해를 고려하여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연가 사용을 자제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게 연가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연가보상비를 지급받는 것도 아니다. 일반 직장인처럼 자녀의 학교행사에 쉽게 참여할 수도 없고 학기 중에 가족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며, 쉼이 필요한 순간에도 교사 자신의 휴식보다는 학생의 학습권을 더 고려해왔기에 방학 동안이라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다.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분주한 시간이기도 하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들을 발빠르게 따라다녀야 미래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좀 더 쓸모있는 배움을 전해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방학인 것이다.

또한 교사의 근무와 일반 직장인의 근무를 동일 선상에 놓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교사의 근무시간은 아침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 퇴근하면 업무가 끝나는 규칙적인 상황이 아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심지어는 휴일조차도 학부모나 학생, 그 밖에 학생과 관련한 누군가와의 상담이 돌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어찌보면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교사의 하루일과를 일반인들의 직장생활과 똑같다고 보는 시각들이 서운하기까지 하다.

교사들에게서 방학을 빼앗겠다는 것은 교사의 일을 학생을 가르치는 일보다는 행정적인 업무를 중심으로 보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학생들과 교사가 그저 놀고 있는 줄 안다. 방학을 맞이하며 초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민원은 돌봄교실 운영과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맡겨놓고 싶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를 바라는 맞벌이 학부모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아침잠을 실컷 자고 싶고 동네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이 배려받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얼마 전 시민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요즘 교사들이 편하다는 글이 올라와 댓글로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고 들었다. 예전처럼 교과서만을 가르쳐야 하고 배운 내용을 지필평가로 확인해서 학부모에게 알려주는 일이 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여전하다. 예전 같은 교육을 안하면 교사는 편하다고 생각하는 가보다.

내 경험에서 볼 때 주어진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고 그 내용만을 평가하고 학생들이 얻은 점수 그대로 통지하는 일이 훨씬 쉽다.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강의식, 주입식, 암기식 수업이 교사의 노력을 덜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르침만으로 21세기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한다. 최근에 학교현장에서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교사만의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의 배움을 이끌어내게 하고 있는데 교육과정 재구성이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학교현장에 나온 새내기교사들은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말이 생소하여 당황한다. 국가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와 지도서만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대학에서 배웠는데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니 어찌해야할지 난감해한다. 또한, 대학에서 공부한 학생수준과 발달상황이 현장에서 맞닥뜨려졌을 땐 이론과 현실이 다름을 실감하며 개별 학생 하나하나에 대한 생활과 가르침의 방식을 배워야한다. 결국 대학에서 배운 내용보다는 졸업 후 학교현장에서 만나는 실전에 맞게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게 요즘 젊은 교사들의 고충이다. 새내기교사들의 부모는 분명 대학을 보낼 때 좋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만 했을 뿐 실제 학교현장에서 새내기교사들이 견뎌내야 하는 여러 가지 장면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그러니 새내기교사의 엄마가 자신의 자녀가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내 자식을 괴롭히지 말라며 혼내고 돌아갔다는 웃픈 소식도 들린다. 나의 아들딸은 교직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가끔 가르치는 일만 한다면 교사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사는 지식만 전달하는 역할로 끝이 아닌 걸....

교사가 가르침을 위해 해야할 일은 많다. 단순한 행정업무보다 교사가 해야할 본질적인 업무는 교육이다.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무엇을 가르쳐야하는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고 교사도 끊임없이 배워야한다. 가르치기 위해서 배움의 시간도 필요하다. 또한 교사가 아프면 학생들에게도 그 상처가 전달될 수 밖에 없다. 교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한 학기동안 쌓인 피로와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방학을 없앤다면 일반 직장처럼 아무 때나 휴가를 맘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야할 것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맘대로 쓰지 못하는 교사들에게서 방학을 빼앗겠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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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교육부가 교장 공모제 확대에 대한 입법예고를 했다.

2007년부터 도입되었던 교장 공모제는 세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첫째, 교장자격증을 지닌 교장 또는 교감만 지원가능한 초빙형 공모제

둘째, 교사경력 15년 이상인 경우에 교장지원이 가능한 내부형 공모제

셋째, 외부전문가에게 개방되는 개방형공모제

이 세가지 공모제 중에 현재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초빙형 공모제이다.  

개방형공모제는 논외로 두고 최근 불거지고 있는 교장공모제는 도대체 무엇이 논란거리일까?

교원의 가장 대표적인 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최근 무자격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해 교원의 81.1%가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반면에 실천교육교사모임과 새학교넷 설문결과는 71.5%가 공모제확대 찬성)를 내놓은 일이 있다.

설문은 명확했을까?’생각을 했다. ‘무자격 교장공모제라는 어감이 설문응답자들에게 전달되는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

무자격 교장은 어떤 교장을 말하는 것일까?

학교현장에서 무자격 아니 무능력한 교장들을 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무자격 교장공모제확대는 반대하고 싶다.

무자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역할이나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 교장으로서 갖추어야할 조건이나 능력이 없는 무자격 교장. 그런 교장들에 대한 공모제 확대는 누구나 반대할 것이다. 그러니 설문자체가 모호하다.

학교현장에서 교사경력 15(교육전문직으로 갈 수 있는 기준경력)에 교육전문직으로 근무하다가 교감 1년 근무(교육전문직으로 근무하다 교장자격증을 취득한 경우에는 교감경력 1년만 있어도 된다하니)하고 교장 자리에 오른 젊은 교장들을 보면 8년 후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물론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교장으로서 4년 근무, 중임하면 8. 그 다음엔 교육전문직 또는 해외한국학교 파견, 그도 아니면 초빙형 공모교장 등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정년퇴직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몇년 전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예비교사들을 모아놓고 "전교조 교사로 살면 말로가 비참해진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입장에서 보면 교장으로 퇴직하지 못한 교사들이 비참해보이는가 보다.

교장의 임기를 마치고 평교사로 내려온다는 것은 불명예스럽게 생각하는 교장자격증 소지자들이 교장의 8년 임기를 마치고 교장으로서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초빙형 공모교장이다. 그 임기연장의 기회를 얻으려면 초빙형 공모제가 확대되어야하는 것인데 내부형 공모제를 확대한다니 그들로서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교장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숱한 세월을 얼마나 고생했는데, 대통령 이름 석 자가 새겨진 교장임명장(예전에 교장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임명장을 직원들에게 자랑스럽게 흔들어보이던 생각이 난다)을 받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런 어려움을 모르는 것들이 감히 교장자리를 넘보다니 그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할 터이다.

그들이 말하는 교장의 자격은  교장자격증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자는 것이겠지.

누구를 위한 것일지 모르는 수업연구와 각종 연구대회 참가하고 꼼꼼하게 업무처리하는 그런 능력을 갖춰나가는 것이 진정한 교장자격일까?

아이들과 즐겁게 배움의 길을 열어가고 아이들 입장에서 교육활동들을 고민해하다 승진점수를 챙기지 못하면 교장으로서의 자격은 없는 것일까?

스무명 넘는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교실보다 더 큰 면적의 교장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결재버튼만 클릭클릭하고서도 직접 결재한 문서를 챙겨보지 않고 학교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는지 담당자가 직접 찾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른척하는 교장은 과연 교장자격이 있는 것일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교육활동을 추진하거나 현장학습을 가려하면 아이들의 생각보다는 안전사고가 날 염려만 하고앉아 노심초사하는 그들은 교장자격이 있는 것일까?

즐겁게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보는 것보다 수업설계안을 가지고 두 세차례 반복검토하면서 형식적인 문서들에 푹 빠져사는 그들은 교장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일주일에 한시간 수업하는 것도 싫다하고 업무보다는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로 만들고자 교사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도 업무를 줄여주기는커녕 책임회피를 위한 문서를 더 만들어내길 원하는 그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교장이란 말인가!

그 넓은 교장실에 혼자 앉아서 누군가가 찾아오기만 기다리고 올라온 결재문서에 딴지를 걸고 싶은 그런 교장들이 그렇지 않은 교장들보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나라의 교육현장에서 아무리 해외연수를 다녀온다해도 19세기나 21세기나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인다.

무자격 교장공모제에 대한 설문이라면 나 역시 반대를 했을거다. 그동안 학교현장에서 무자격, 무능력한 교장을 수없이 보았을테니 그런 무자격 교장들에게 공모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당연히 반대할 일이다

한국교총이 설문한 무자격 교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무자격 교장은 누구를 말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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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발견하는 일상들 속에서 행복한 삶을 고민해본다.

#1

유모차를 밀고가던 젊은 엄마가 아기의 미소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찰칵’‘찰칵아기의 미소를 담아두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아기와 엄마의 미소가 아기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미래의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기를...

 

#2

벤치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작은 여자아이(너댓살쯤?)와 아빠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반응하는 아빠의 모습이 정겹다. 아이는 높임말을 쓰면서 아빠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투정섞인 아이의 말에도 장난스럽게 받아주며 나누는 다정한 대화가 아이가 어른이 되는 날에도 계속될 수 있기를...

 

#3

출근길에 농로를 걷던 반려견과 아주머니. 차를 발견하고는 아주머니와 반려견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피하려한다. 아주머니가 반려견의 목줄을 잡아끄는데 반려견은 자신의 방향으로 아주머니가 오기를 바라는 눈치다. 아주머니가 이겼다. 여느때같으면 아주머니와 반려견은 같은 방향에서 차를 비켜 서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4

TV가 켜져있는 매장에서 국회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각자의 주장을 고집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 아주머니가 맨날 싸우는 국회의원들 꼴보기 싫다면서 다른 채널로 돌려달란다. 주인장이 드라마로 채널을 돌렸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고성을 지르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야비하게 다투는 모습이 나온다. 다른 채널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없다. 정치적 논쟁은 짜증스럽고 일상생활에서의 다툼은 볼 만하다는 것인가? 내 눈엔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학부모상담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이 나라의 상황이 지금 실컷 놀다가는 어른이 되어 불행해질 것 같아 불안하단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방과후수업 듣는다고 똑같은 방과후수업 듣겠다면 보내줘야 행복한게 아니냐고 말한다.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싶어 놀이터에 나가면 함께 놀 친구가 없다고 말한단다. 친구들이 학원갔기 때문이란다. 또한 옆집 아이가 학원다니면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걸 들으면 내 아이도 학원보내서 공부를 잘 하게 하고 싶단다. 그래서 학원가서라도 친구랑 놀라고 학원보낸단다.

수업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내달리는 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하여 일기를 안 써오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남아서 쓰고 가라고 했더니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한단다. 상담하자고 그 아이의 엄마를 불렀다.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을 안고 온 엄마, 다섯 살 아이가 들어오자마자 보챈다. 집에 가자고 자꾸만 보챈다집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많은가보다.

학원을 세 군데 보낸다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혹시 아이가 학원 스트레스 받지 않겠나 물어봤더니 아이가 힘들긴 하지만 괜찮다했단다. 왜 괜찮다고 대답할지 생각해봤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학원 안 간다 했을 때 보여지는 엄마의 실망하는 얼굴빛때문일거라고...

다음날 아이에게 물었다.

학원 세 군데나 다니는 거 안 힘들어?”

힘들어요. 집에 돌아오면 저녁시간이라 밖에서 친구들과 놀 수도 없고...”

그럼 엄마께 학원 안가겠다고 하면 되잖아?”

제 친구 OO이는 저보다 더 많은 학원을 다니는 걸요. 그 친구보단 제가 나아요.”

이럴 땐 대견하다 칭찬해야하나?

 

방과후학교 조례제정 이후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하는데 서로 실타래를 풀겠다고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이러다 언젠가 끊어지지.

조례제정이 공포되고 언론에 공론화되자 또다른 지역들이 방과후학교 조례를 만들려고 시도를 하고 있나보다. 방과후학교 법적근거를 지역에서나마 마련해놓자고 하는 발상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지역에서의 이런 움직임이 안타까웠을까? 더불어민주당 김한정의원을 중심으로 방과후학교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자고 발의했다는 소식이 언론으로 흘러나온다.

?

방과후학교의 공교육화를 시도하고 싶은 것인가?

중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로 학생들의 학습노동시간은 더 길어졌다. 학교에서의 학습시간에 더해 학원에서의 학습시간까지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전세계에서 가장 길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공부의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어른들임에도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있기만을 바라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대학입시제도에 귀결되는 악순환적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야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남들이 알아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믿음 때문에 유모차에서 방실방실 웃던 아이의 미소가 점점 엷어지는 것이다. 아빠와 정감있게 대화하던 아이의 시끄러운 수다는 점점 침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미소와 수다가 사라진 가족간의 시간들이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방과후학교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특히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의 실정을 단순한 국정감사자료로 파악하지 말고 발로 뛰어다니며 눈으로 확인했다면, 방과후학교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률개정논의를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결자해지차원에서 방과후학교의 문제를 평생교육의 일환이나 복지정책의 방식으로 풀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자꾸만 정치적 논리로만 방과후학교를 바라본다. 누구나 만족하는 성공적인 정책으로 자평하면서 공교육제도 안으로 정착시키려고 자꾸만 학교 안에 밀어넣는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의 교육이 공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럼 학생과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모든 방과후학교 교육을 학교는 담당해야한다는 것인가?

 

방과후학교 운영의 취지와 체제가 다르니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를 면밀히 살펴봐야한다.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는 돌봄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

맞벌이 가정이면 맞벌이라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된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을 위해 마련된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을 쉬게 해주고 안전하게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에 대해 불만이 쏟아진다. 뭔가를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돌봄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학부모들, 늘 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만족스럽다는 학부모들, 그래도 모자라 아이들을 학원으로 또 보내는 학부모들.

홑벌이 가정은 나름대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게 어렵다하여 방과후학교를 통해서라도 학교에 맡기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집에 늦게 올 수 있도록 매일 다양한 방과후학교 수업시간표를 작성한다. 초등학교 1,2학년 수업시간이 다른 학년보다 일찍 끝나는데 1,2학년 아이들의 돌봄기능을 포함한 사교육기능까지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수업끝나기 무섭게 방과후수업교실로 아이들이 이동하기를 바란다. 그래도 아이들의 귀가시간이 빠를 것 같으면 학원 수업으로 학습시간표를 또 채운다.

 

과연 학교라는 곳에서 공적 책임을 다하여 돌봄을 해준다한들 학부모들이 만족할까?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교실에서 놀게 해주면 그건 돌봄의 기능을 못한다는 말인가?

방과후학교가 아닌 방과후활동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동아리활동을 하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은 학교의 돌봄 기능이 아니라는 것인가?

 

난 차라리 방과후학교가 아닌 방과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토대를 마련해줬으면 한다. 진심으로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과 즐길 거리들을 공적으로 제공받는 것이라면, 또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과정 이외의 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없고 형식만 갖추는 법률마련이 현실적인 실태파악없이 탁상으로 공론화되는 한 교육의 백년지대계는 요원한 일이다.

 

왜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마을에서 웃고 뛰놀며 행복하면 안 되는걸까?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2014년 그 해의 사자성어, 指鹿爲馬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그 해의 사건과 사회의 현상을 함축적으로 반영한 사자성어를 발표해오고 있다.

사슴을 말이라고 일컫는 것을 뜻하는 지록위마, 흑백이 바뀌고 옳고 그름이 뒤바뀐 경우에 사용한다는 사자성어다.

2014년 당시 거짓이 진실인 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정치계의 온갖 갈등상황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라하여 대학교수들이 선택했던 사자성어.

당시 사슴을 말이라 우겼던 박근혜씨는 지금 어찌 되었나?

최근 지역에서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로 이해당사자간에 시끌시끌하다. 방과후학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제정했다는 조례지만 방과후학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제정공포되어 그저 실적을 위한 조례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831일 몇몇 지역신문기자들이 시의원의 조례가 위법하지 않다는 글을 싣고 있다. 방과후학교 운영-지원 조례적법 유효라는 제목의 서울일보 기사에서 기자는 세종시의회가 다양한 의견 수렴을 조례에 반영하기 위해 20163월부터 교육청과의 협의 5회와 입법을 위한 간담회 1, 교육부 질의 등으로 거쳐서 제정되었다고 적고 있다. 같은 날, 세종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운영 및 지원 조례적법, 유효해라는 제목의 대전투데이 기사 역시 똑같은 내용으로 적고 있다. 똑같은 기사.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서 해직언론인들은 말한 내용 중 기억나는 대사.

침묵하지 않았다” "언론은 경비견으로서 짖어야한다"

그동안 취재현장에서 기레기라는 손가락질에 부끄러웠다며 이제라도 참언론인으로 서고 싶다고 4일 0시를 기해 KBSMBC는 파업을 결의했다. 케빙신 또는 엠빙신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지난 9년간의 아픔을 딛고 국민의 방송으로,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오겠다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언론인이라면 적어도 기사를 내보내기 전 관련당사자들을 만나 각자의 주장을 들어보고 그 주장들 사이에서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린 후 균형있게 글을 써야하는게 아닌가?

일반인으로 적법함과 위법함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으니 두 신문의 기사내용을 읽고 보니 근거로 제시한 세가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조례가 적법하고 유효하다는 세가지 근거를 따져보자.

첫째 근거로, 전교조 법률자문 결과 지방자치법 제22조에서 규정한 법률유보원칙에 대해 방과후학교 조례가 교육감과 학교장, 교원 등 교육공무원에 대해서 준수토록 규율하고 있기에 지방자치법에서 말하는 주민에 해당하지 않아 위반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지자체의 조례들 중 교육행정에 관련하여 교육공무원이 준수해야하는 조례들은 상위법과 관계없이 제정되어도 무관하다는 뜻인가? 또한 이 조례로 인해 학부모가 부담해야할 수익자부담의 방과후학교가 더 많아진다면 지자체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두 번째 근거로, 지방자치법 제22조에 따라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말의 의미를 법령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라고 해석하여 방과후학교 조례가 ·중등교육법을 위반하려면 학교에서 방과후활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야 하나 그런 규정을 찾을 수 없으니 위법하지 않다고 적고 있다.(방과후활동이라고 적은 것은 아마도 방과후학교를 잘못 표현한 것으로 생각됨)전교조 법률자문에서 조례가 ·중등 교육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는 어느 조항에서도 방과후활동 아니 방과후학교에 대한 규정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급되지 않은 내용을 놓고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찾을 수 없으니 위법하다는 것은 너무나 억지스러운 논리아닌가!

세 번째 근거로, 방과후학교 조례 제61방과후학교는 학교의 여견과 학생·학부모의 요구를 고려하여,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학교장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으므로 법률우위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교조 법률자문에서 학교장의 자율권과 재량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조례 제61항의 내용이 아니다. 조례 제53학교장은 제1항의 기본계획에 따라 방과후학교의 연간운영계획을 수립하여 학교교육계획에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초·중등교육법 제231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에 대한 위반을 말하는 것이다. 이 조례의 서문에 보면 분명히 방과후학교를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활동으로 적고 있다. 그렇다면 초·중등교육법에 교육과정 이외의 활동으로 방과후학교 운영에 대한 규정이 있었는지 살펴봐야한다. 그렇지 않음에도 학교교육계획에 반영하라고 조례에 규정했다면 법률우위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조례가 적법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좀 더 논리적으로 명백하게 설득을 할 수 있어야한다.


가끔 잘못된 가르침을 하고도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 동료를 볼 때, 윗사람으로서 잘못된 것에 대해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충고를 해준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길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 후 전국 최초로 제대로 된 방과후학교 조례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는가! 학교의 책무를 강조하지 말고 지자체의 든든한 행재정적 지원과 교육청의 방과후 교육활동을 위한 정책마련으로 지자체 구성원모두가 행복한 그런 멋진 조례를 전국 최초로 만들어보면 안될까?

轉禍爲福이라 했거늘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생각한 때문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건 아니다. 법의 판단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걸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서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의 의미는 법과 관계 없이 살고 싶다는 뜻이다. 법이라는 것은 참 머리 아프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적 판단이라는 것이 그리 공정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법조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공평하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여럿 보았기 때문에 법과 무관하게 살고 싶었다.

최근에 방과후학교에 관한 조례가 공포되면서 갑작스레 법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손바닥 헌법책을 보고 헌법조문 조금 아는체하고 초중등교육법 조항 일부를 아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헌법과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의 용어가 가지는 의미와 그들간의 관계를 알아보게 되었고 상위법과 하위법간의 관계가 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런 것을 알게 해 준 시의원들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는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가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찾다보니

대한민국헌법 제117조
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지방자치법
제22조(조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헌법 제 117조에서 살펴보면 조례는 상위법의 범위 안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상위법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공식적으로 2006년부터 법적 근거없이 운영되어온 공교육 제도 안에서의 방과후학교는 불법이었던 셈이다. 단지 초중등교육과정 총론에 언급이 되어있긴 하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바탕으로 방과후학교 또는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서 ‘개설한다’가 아니라, ‘개설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학교에 대해 방과후학교 운영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으면서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아무 말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었고 그에 따른 우려들을 현장의 교사들은 목소리 높여 이야기했음에도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로 그런 외침은 늘 묻혀버렸다. 아이들의 무거운 책가방과 빼곡한 시간표에도 불구하고 오직 학부모들의 만족도만이 방과후학교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나 일반인들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저 믿고 맡길 뿐이다.

최근 일주일간 방과후학교를 운영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신나게 놀았다. 학교 곳곳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굳이 돈들이지 않아도 잘 노는 아이들을 학부모들은 왜그리 노심초사하는지...

어찌 되었든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로 인해 무사안일하게 생각하는 교육감이나 시의원이 모르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싶다.

그들은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학교현장의 공교육 살리기를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고 학교급별로 방과후학교의 상황이 현저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이 방과후학교를 실시하는데 따른 보여주기식 조례를 만든 것이다. 그들 표현처럼 법적 근거없이 운영했던 방과후학교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님에도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조례가 자치단체 주민들에게는 법적 효력을 가지는 강제 규정임에도 아무 문제 없을 거라니... 

중등학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초등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정규수업이 끝난 직후 쉬지도 못하고 방과후 수업교실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과도한 학습노동력을 강요받고 있다. 방과후학교 수강은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있으나 실제로 학교현장을 들여다보면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 수강생 대부분은 저학년이고,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취지로 학부모에 의해 저학년 때 너무나 많은 방과후학교를 수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하는 저학년 학생들의 신체적 발달특징은 고려되지 않은 채 정규수업시간표로 모자라 방과후 두 서너 시간씩 학교라는 공간에서 또다른 시간표에 얽매여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머물러 있어야하는 실정이다.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 수업이 내실있게 운영되고 효과가 있다면 왜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외면당하는 지 살펴봐야한다. 스스로 판단력이 생길 무렵 학생들은 방과후수업을 위해 교실에 갇혀있기를 거부한다. 학부모들의 설득에도 스스로 방과후수업을 선택하다보니 1,2학년보다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현저히 낮아진다. 그 때문에 학년별 수준이나 강좌의 특성에 관계없이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수강대상을 저학년까지 확대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내용상 어려우면 게임형식을 도입해서라도 저학년에게 흥미위주의 강좌를 실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고학년만으로는 도저히 많은 수의 수강생이 확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저학년과 고학년이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의 강좌를 수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방과후학교 강사의 수당확보를 위해 한시간에 다수의 학생들이 수강하게 되면서 수준별수업이나 개별화지도가 어려워 고학년이 되면서 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방과후학교로 인한 효율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또 한편으로 심각한 것은 학생들의 안전이다. 방과후학교 강사에게 강좌시간내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도록 계약서에 명시하고 있지만 문제는 학생들의 이동과정에서의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방과후학교 수업시간에 땡땡이치고 다른 곳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누군가 찾아나서야 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안전사고의 책임을 학교가 져야하는가의 문제.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방과후학교 길라잡이가 있다하나 강사채용의 준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아 학교자체적으로 강사전형기준을 만들어야하며, 가장 민감한 수강료에 대한 기준마저도 학교자율에 맡겨 더욱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두었다. 수강료책정에는 방과후강사의 수당을 포함하여야 하는데 교육청의 기준은 없고 인근 학교와 형평성을 고려하라고 하는데 같은 지역에서 모두 똑같이 책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현재의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례에서 무조건 학교의 책무를 강제하고 있어 더욱 문제인 것이다. 관리감독해야할 지자체의 책무를 강제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현재 방과후학교강사노조에서 자신들의 강사료 일부를 수용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료는 강사료의 8%이내에서 책정할 수 있게 되어있도로 규정되어있고, 학생들의 수강료에는 강사료와 수용료가 포함되어있다. 강사료에서 수용료를 떼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수용료를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용료로 방과후업무를 보조하는 시간제인력 인건비와 방과후학교에 사용되는 복사지 등의 소모품구입, 방과후학교 수업교실의 전기료 등을 지불할 수 있다. 그 외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위해 시설을 마련하거나 비품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은 학교예산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조례제정으로 인해 방과후학교 운영이 온전히 학교현장의 책임으로 돌아온다면, 조례제정 전보다 더 많은 학교예산을 어쩌면 정규교육과정보다 더 많은 예산을 방과후학교를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이는 방과후학교의 강좌 수에 따라 학교예산의 비율이 책정이 된다면 정규교육활동을 위한 예산의 많은 부분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삭감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연 정해진 학교예산의 범위내에서 정규교육활동의 예산보다 방과후학교의 예산을 더 많이 편성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로 인해 정규교육과정의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음을... 


방과후학교의 조례제정은 분명히 공교육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 학교현장에 방과후학교가 들어온 이후 다양한 형태로 정규교육과정은 침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이 진행되어왔다는 이유로 제정된 이번 조례는 오히려 학교장의 책무성을 강조하고 학교교육과정에 방과후학교 계획을 반영토록 함으로써 학교의 자율권, 재량권을 침해하는 근거를 정당화시킨 셈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자율성, 다양성, 개방성을 확보한다는 미명아래 방과후학교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학교현장에서 실시토록 했다. 거기에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보육의 개념까지 학교현장으로 끌어들여 초등돌봄교실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는 돌봄과 방과후학교를 함께 포함하는 낱말이다. 이처럼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는 보육을 중심으로 하는 특기적성교육으로 보아야한다.

방과후학교 강사들을 포함하여 학부모나 시민단체 등이 학교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만으로 방과후학교를 공교육이라 보는 시각도 있으나 공적제도 하에서 공적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규교육과정과 달리 돌봄과 방과후학교는 분명히 학부모의 선택에 의해 수익자부담으로 이루어지는 사교육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례 제정이 방과후학교를 공교육제도 안으로 끌어드리는 합법적인 절차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방과후학교가 공적제도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면 공적 주체 즉, 정규교사에 의한 교육과정이 짜여지고 정부의 예산지원이 대폭 이루어져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랬을 때, 방과후학교는 반드시 외부강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에 현직교사들로 방과후학교 강좌가 개설될 수도 있다. 마치 중등학교에서 예전에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강제했던 보충학습처럼 말이다.

지금도 학교장의 책임하에 놓여진 방과후학교가 내부강사 즉, 현직 교사에 의해서 실시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방과후강사노조가 바라는 것처럼 그들의 처우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내부강사에 의해 방과후학교가 운영될 소지도 분명히 있다. 내부강사에 의한 방과후학교 운영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나 조례로 인해 학교장 책임을 강화했다면 물리적 공간활용이나 안전성 확보차원에서 내부강사에 의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는 분명한 공교육의 파행이다. 정규교육과정에 더해 방과후학교까지 교사가 강좌를 개설하게 된다면 정규교육과정도, 방과후학교도 그 어느 쪽도 내실을 기할 수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지 않을까?

초등학교에서의 돌봄을 포함한 방과후학교는 보육의 개념이 더 크다.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많은 지역아동센터에도 돌봄기능이 있음에도 방과후학교와의 연계를 이유로 오로지 학교에만 모든 기능이 떠넘겨진 셈이다. 돌봄을 포함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는 복지정책의 하나로 보아야한다. 국가의 복지정책의 하나로 이루어져야함은 물론이고 지자체와 교육청이 제각각 돌봄을 운영함으로서 낭비되는 예산을 하나로 통합운영하여 지자체구성원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한다.

또한 특기적성교육은 평생교육의 하나로 보아야할 것이다. 지자체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어야한다는 측면에서 특기적성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정규교육과정이 끝나고 신나게 뛰어놀고 특기적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다면 아이들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 같은 꿈을 꾼다.

평생교육으로서의 방과후학교와 복지정책으로서의 초등돌봄교실을 주목한다면 이번 조례제정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인다. 조례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자체와 교육청에서의 책무성을 간과한 채 학교현장에만 떠넘기는 조례는 누구를 위한 조례인지 알 수 없게 제정된 것이다. 지자체 주민으로서 조례제정에 관심갖고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무시하고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은 고려하지 않은 조례이기에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굳이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를 만들고 싶다면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여 지자체의 넉넉한 예산지원과 교육청의 짜임새있는 방과후학교 교육정책, 그리고 지자체 내 숨어있는 인적 물적 자원들이 결합될 수 있도록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조례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과 학부모와 방과후강사들과 학교현장의 교직원들 모두가 만족스러운 마을교육공동체에 의한 방과후학교 아니, 마을학교로 자리매김하게 하지 않을까? 이것이 허황된 생각일까?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공교육(公敎育): 공적 준거와 절차에 따라 공적 주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교육

공적(公的):공익을 위하여 공적 주체가 공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성격을 가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공교육의 제도화를 위해 공교육을 운영하는 원칙과 기준, 절차를 법으로 정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과후학교는 공교육일까?

방과후학교가 드디어 수면으로 올라와 논쟁거리가 되려나 보다. 조만간 방과후학교 조례와 관련한 사람들이 만나 토론의 장이 열릴 수도 있겠다. 조례가 제정되기 전 마련되었어야 할 자리였는데 좀 아쉽다.

나는 그동안 학부모들을 만나 방과후학교에 대해 토론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방과후학교가 왜 필요한 것인지, 방과후학교에 왜 아이들을 참여시키려고 하는지, 방과후학교 강좌수를 왜 늘려달라고 하는지, 방과후학교가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물어봤다.

학교에서 정규수업이 끝나고 그냥 막연하게 놀게 놓아두면 신변안전이 우려스럽고 놀이터에 나가봐도 함께 놀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한다. 그래서 학원으로 보내야하는데 학원비가 만만치 않아 방과후학교 강좌를 수강하면 좀 안심이 된다고 대답한다. 또한 자녀가 많지 않다보니 집에서 막연하게 놀게 두는 것도 아이에게 안 좋을 거라 생각된단다. 부모가 놀아주는 것이 한계가 있기도 하고...

그러나 방과후학교에 참여시켜 본 학부모들은 중학년이 지나면 아이들이 방과후학교 수강에 시들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매년 신입생 학부모들과 방과후학교에 대한 토론을 되풀이해야한다.

어떤 학부모는 방과후학교 강좌수가 많은 것이 좋은 학교의 지표가 되고 그 좋은 학교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인근 아파트 단지의 집값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방과후학교 강좌 수에 대해 타학교들과 비교해서 의견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방과후학교의 강좌 수가 좋은 학교의 기준이 된다니 말이다.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는 보육의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에 박근혜정부는 돌봄이라는 보육까지 방과후학교로 추가한 것이다.

초등돌봄교실이란 1,2학년 학생들 중 맞벌이가정이나 저소득층가정에 해당하면 학교에서 부모들 퇴근시간까지 무상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기능을 말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 돌봄교실에서의 역할을 보육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돌봄인력을 뽑을 때 교사자격증이나 보육교사자격증을 요구하는데 마치 방과후학교처럼 무언가 가르쳐주는 것까지 학부모들은 요구한다. 그것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돌봄교실에 들어오는 학생 중 일부는 한두 시간 머물다가 학원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돌봄교실에서 배우는 게 없다고 학부모들이 결국은 학원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들은 지치고 힘들어하는데 그런 아이의 상황에 대해서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를 부모맘대로 하는 것이다.

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방과후학교 조례논의의 방향은?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자신의 아이에게 학교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방과후학교 강좌를 수강시켜줄 수 있어서 믿음이 갔다는 내용이다. 아이와 부모에게 아주 반갑고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벌써 십여년 넘게 실시되어온 방과후학교를 다수의 학생과 학부모가 호응하고 있고 학교현장의 교사들도 방과후학교 운영을 중단하자고 요구하지 않는데 왜 조례제정 후에 전교조가 반대하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전교조가 조례의 법적미비, 교사들의 업무부담, 사교육 치부 등이 명분으로 조례폐기 주장을 하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궁금하다. 이 기자는 방과후학교 조례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을까? 지난 십여년 간 방과후학교를 운영해 온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은 침묵하고 있었을 거라 믿고 있는 것일까? 다수의 학생과 학부모가 호응하고 있다는 근거자료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각 이해당사자들을 찾아가 취재를 하고 특히 조례폐기를 주장하는 전교조를 찾아가 이해할 수 없는 주장들에 대해 궁금한 내용들을 취재는 했을까?

잠시 다른 이야기하나, 며칠 전 공범자들영화에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대답을 듣지 못하면서도 취재를 하려고 애쓰는 참언론인들을 만났다. 카메라를 가리고 취재기자를 밀치는 상황들이 위험해보이는데도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쫓아다니는 취재근성을 가진 그런 기자들을 만나고나니 이 나라의 많은 기자들이 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에게 각본없는 질문 하나 하지 못하던 기자회견 모습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바뀌어갈거라 믿는다.

 그 기자의 말처럼 방과후학교의 다양한 강좌가 아이들에게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사교육비를 절감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학교현장에서 방과후학교를 운영해왔다. 아이들의 소질을 계발하고 특기를 신장시킬 수 있는 그런 방과후학교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일주일 내내 여러 강좌를 선택해 꼼짝할 수 없는 시간표를 작성해놓고 이교실저교실 아이들을 배회하게 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 줄까?

또한 아이들의 즐거움, 특히 저학년 아이들의 다양한 체험을 위해 고학년은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교실들을 내주어야 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제도하에 있는 정규교육은 이렇게 방해를 받아도 괜찮다는 것일까?

 

방과후학교 업무를 담당하면서 만난 아이들과의 대화 

 

#1

**강좌를 수강중인 1학년 아이가 무거운 악기가방을 질질 끌며 투덜투덜

방과후학교 가기싫어요.”

? 재미있는 거 배우잖아.”

그래도 싫어요. 엄마가 강제로 가라고 한거예요.”

엄마는 네가 하고 싶다고 신청한건데 무슨 소리야?”

아마도 처음엔 아이가 하고 싶다고 신청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딱딱한 책상과 의자를 벗어나 운동장에서 놀고 싶은데 시간에 맞춰 가야하니 짜증스러워진 것이다. 악보를 읽기 힘들텐데 그 조그만 손으로 현을 짚는 것도 힘들 터...

 

#2

방과후학교 **강좌 강사가 사고로 결강하게 되어 그 사실을 알리러 방과후학교 수업교실로 갔다.

강사를 기다리고 있는 1,2학년 아이들에게

얘들아, 선생님이 갑작스런 사고로 오늘 수업 못하신대.”

만세!”

? 너희는 재미있는 **수업을 못하게 되었는데 왜 만세를 불러?”

하기 싫단 말이예요. 엄마가 억지로 시킨거예요.”

사고를 당한 강사를 걱정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물론 걱정하는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시간에 수업받을 고학년 학생들은 오히려 보강을 언제하느냐를 물어왔다. 학부모도 마찬가지. 언제 보강하느냐를 묻는다.

 

#3

방과후학교 강좌가 끝나고 교실을 나오면서 아이는 들고 있던 작품을 내게 준다.

선생님, 이거 선물이예요.”

? 예쁘게 만들었는데 집에 가져가서 엄마께 자랑해야지. 왜 날 주는거야?”

엄마가 이런 거 가져오면 다 버려요.”

아이의 말에 씁쓸했다. 왜 아이가 재미있게 만든 작품들을 버린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쓸데없이 돈주고 방과후학교 강좌를 듣게 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난 우리 아이들 키울 때 방과후학교 같은 건 없었지만 동아리활동하면서 만든 작품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사실, 반쪽이 잡동사니들을 모두 끌고다닌다고 이사때마다 면박을 줬지만)

 

아이들이 그냥 놀면서 배우게 하면 안될까? 잘 노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만 학부모들은 인위적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걸까? 정규교육과정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선행학습이 가능한 방과후학교가 과연 아이들의 배움에 어떤 도움을 줄까? 

난 아이들과 방과후활동을 하고 싶다. 함께 놀이를 하고 싶고 가끔은 요리도 해보고 마을길도 걸어보고 가끔은 산에도 오르고 싶다. 정규수업시간에 해도 되지만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아이들과 활동을 하려면 방과후시간이 좋은데 수업끝나기 바쁘게 방과후활동이 아닌 방과후학교 수업교실로 아이들을 내몰아야한다. 가기싫어하는 아이들 등을 떠밀어야 한다. 그런 방과후학교가 정말 우리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네덜란드의 문화역사가 Johan Huizinga는 인간의 본원적 특징이 놀이이며,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낸 것도 놀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그냥 놀면 되는 우리 아이들.

그냥 놀게 놔두면 안되나?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방과후학교 조례제정과 관련해서 시끌시끌하다.

조례공포전에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공포 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잡음이 많다.

방과후강사노조의 입장에서 기사가 나왔다.

'방과후학교 강사는 사교육자? 억울하다'

이후 한차례 더 방과후강사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방과후학교 조례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해당사자간에 극명하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방과후학교 조례를 제정한 시의원의 입장은 교육청의 방과후학교 길라잡이 내용이 강제성이 없어서 법적 근거로 시조례를 통해서라도 방과후학교 강사들의 처우를 보장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조례제정 공포이후 방과후강사 노조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발표하기 했었다. 그러나 이들은 방과후학교에 대한 오해를 한 듯 보이고 조례제정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과후학교의 조례제정이 방과후강사 노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의 처우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될 수 있을까?

학교현장에서 이 방과후학교 조례를 바라보는 입장은 국가가 정해준 국가교육과정 이외의 교육인 방과후학교에 대해서 어찌하여 학교장 책무를 강조하였는지에 대한 반발이다.  방과후학교라 하면 과거 노무현정부때부터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실시된 것으로 학교밖 과외 활동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수요자중심 교육(이 용어 역시 모순이다. 학교가 어찌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인지)으로 전환되었고 학습자 선택권을 확대하여 교육의 극대화를 꾀하고자 했던 교육정책이다. 거기에 박근혜정부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학교에서의 보육이 이뤄지도록 하는 초등돌봄교실까지 방과후학교로 포함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시행된 교육정책(복지정책이라고 말하고 싶다)이라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결국은 학부모의 몫으로 돌아온 실패한 정책이라고 본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방과후학교는 중등의 사례를 파악해보지 않았기에 초등학교에 국한한 것임을 밝혀둔다. 현재 방과후학교 운영의 형태는 초등돌봄, 교원에 의한 방과후학교, 외부강사에 의한 방과후학교, 교육기부를 통한 방과후학교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의도자체가 사교육비 경감대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규교육과정 외의 다양한 교육활동들을 학생들이 선택하여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인데 실질적으로 학교현장에서 방과후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은 반면 학생들의 만족도는 낮은 편이다. 왜냐하면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오후 두시까지 정규수업을 받고나서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는 상태로 또다른 시간표에 얽매여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규교육과정보다 흥미로운 교육활동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방과후학교 수강학생의 분포를 살펴보면 초등학교 4학년이상의 학생들 수강횟수가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방과후학교 외부강사들조차도 고학년대상으로는 강좌개설조차 꺼린다. 성공한 정책이라면 고학년 학생들의 방과후학교 선호도는 왜 떨어지는 것일까?방과후강사들은 왜 저학년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하고자 할까?

그건 단순하다. 1,2학년 학부모들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도와줘야하는 것을 부모역할로 믿고 있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1,2학년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학부모의 선택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사입장에서는 가능한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어야 수강생이 많고 수강생이 많다는 것은 곧바로 방과후강사들의 수입으로 이어지기에 학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저학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하는 일이 많다. 방과후학교 강좌는 대부분 수익자부담 즉, 학생들이 수강하는 만큼 학부모들이 지불해야하는 비용으로 채워진다.

신도심 학교로 옮겨와서 방과후업무를 자청하여 맡았다가 최근 방과후학교 강사료 책정 오류로 인해 학부모들로부터 민원폭탄을 받았다. 다시 강사료를 책정하고 안내하는 과정에 이번에는 방과후학교 강사들로부터 책망을 들어야했다. 여기서 깨지고 저기서 깨지는 업무이기도 하다. 방과후학교 강사수당에 대해 기준제시도 없이 나몰라라 하던 교육청은 학부모민원을 받고서야 강사수당 책정에 대해 조언하는 배려를 베풀었다.  

방과후업무를 하다보면 교사인지, 행정가인지 알 수 없었다. 방과후업무를 자청한 이유는 일반적인 방과후학교의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기보다 학생스스로 활동하는 방과후 동아리활동을 중심으로 학생자치를 펼쳐보기 위해서였다. 방과후학교가 아닌 방과후 자율동아리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율성을 키우고 소질과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방과후업무가 아닌 방과후학교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실제로 교육활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학년말에 학부모들과 학생들로부터 방과후학교 강좌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그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외부강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낸다. 외부강사 지원자들의 서류전형을 실시하고 2~3배수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한 후 최종 합격자를 선정한다. 그 합격자들에 대한 범죄경력조회를 신청하고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다면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방과후학교 운영시간표와 강사료를 조율하여 그들이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구입해줘야하고 수업할 수 있는 교실들을 관리해야한다. 그 뿐이 아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학교 강좌에 대한 수강신청을 받고 수익자부담으로 거둬들일 수강료를 계산해야 하는 일, 월말이면 강사들에게 지급할 수당을 계산하기 위해 출석부와 출근부를 정리해야하는 일, 학기당 1회 공개수업을 실시하여야 하고 강좌나 강사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해서 교육청에 보고해야하는 일 등을 교사가 해야한다. 또한 방과후학교 운영계획을 학운위 심의를 받아야하며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동사항이 있을 때마다 학운위 심의를 받아야한다.

이런 과중한 업무부담을 학교장 책임으로 못박아놓은 방과후학교 조례가 문제인 것이지 방과후학교 강사들의 처우를 모르쇠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방과후학교가 공교육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는 정부에서 책임질 일이다. 정부에서 법적근거를 만들되 공교육 현장이 침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방과후학교의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방과후학교 센터를 만들든지 아니면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방과후학교를 총체적으로 관리하여 강사를 채용하고 학교로 보내주든지 개별학교에 책무성을 부여하진 말아야 한다.

또한 학교라는 공간은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지역주민에게 내어줄 수 있는 공간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또한 정규 교육과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평생교육의 장으로 내어주는 것이지 정규 교육과정을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더라도 내어주는 공간이어선 안된다. 방과후학교가 이뤄지는 공간에 대한 인식도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갖춰져야하는 것이지 정규 학교교육과정 안에서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방과후학교는 공교육과정으로 진행되지 않는 과외활동이 분명함에도 학교에서 모든 것을 떠맡도록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노무현정부에서 시작했으니 문재인정부에서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싸움으로 부추기지 말고 서로가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복지정책으로 돌봄을 포함한 방과후학교의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덧붙이자면 공공복지의 실현으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돕고자 한다면 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나 돌봄보육으로 해결하기보다 아이들에게 가정을 돌려줘야할 것이다. 저녁있는 삶의 보장으로 따뜻한 가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공공복지의 실현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집에 일찍 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새 정부의 수능개편안이 발표되었다.

현장의 소리들은 기대반, 우려반 교차되는 가운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따가운 질책들이다. 한겨례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어보면 2021 수능개편안이 교육개혁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평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개편안 1안과 2안은 절대평가 적용범위만 다를 뿐, 지금의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대입제도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을텐데 어찌하여 새정부 교육부 수장을 맡은 김상곤장관은 공교육 파행을 막을 개혁안을 내놓지 않는걸까?

삼수를 하고 있는 딸이 6월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내왔다. 2등급이던 영어가 드디어 1등급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영어가 1등급이 나온 이유는 사실 절대평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였던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1등급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딸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절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시험부담은 줄어들지 모르나 1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은 분명하고 어차피 대학은 좁은문을 들어가야하는데 그 좁은문을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생기는 걸까? 대학평준화가 실현되지 않은 이상 변별을 하지 않고는 서열화된 대학에 모든 수험생을 배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

절대평가를 확대한다고 해서 이 나라 공교육이 정상화될거라는 기대감을 갖기는 어렵다. 변별력이라는 문제때문에 또다른 형태의 사교육시장이 성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문재인정부는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두 가지 안을 수능개편안이라고 내놓았을까? 오히려 학교현장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릴 뿐인 개편안을... 현재 중학교3학년 학생들과 그 부모는 복잡한 머릿속 계산을 해야한다.

초등 아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치맛바람 정보와 가진 경제력을 동원하여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만큼 아이들이 똑똑하다. 그 조그만 뇌에 뭘 그리 많이 넣어줬는지 아는 게 많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더 많이 주입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문재인정부마저도 모르쇠하는 건가, 아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공교육의 파행은 대학입시제도, 아니 대학서열화에서부터 기인한다. 우습게도 차근차근 공부를 해서 전공을 정하고 대학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명문대의 잘나가는 학과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정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해주는 명문대에 들어가야하고 그 명문대학을 나와야 누구나 인정해주는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행복한 미래라는 인식 때문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자녀의 인생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부모자신의 욕망때문일지도...

대학입학이란 것이 삶에서 별 의미가 없는 절차라면 어떤 식의 수능이든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이 대한민국에서의 대학입학은 한 사람의 미래 행복이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단계로 인식되어있기에 대입제도의 신중한 손질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새롭게 발표된 수능개편안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개편안이 되어버렸다. 절대평가로 인해 공부를 좀 덜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수능시험으로 등급은 나뉘어져야하고 국영수 중심으로 공교육현장이 채워져야하는 것은 변함없는 그런 개편안이다.


 2001년 어느 학부모가 교육과정 설명회 현장에서 갑자기

우리 아이와 함께 목욕하다가 아이의 정강이 안쪽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여기까지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담임맡고 있는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체육시간에 공놀이나 줄넘기 같은 것만 했는데 처음으로 체육시간에 철봉을 배웠다는거예요. 철봉에 다리를 걸다가 멍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체력이 약한 아이라 걱정했는데 다양한 체육활동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하기에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그 아이는 영특한 여자아이였다. 너무 마른 체격이라 걱정스러웠던 아이.

아이들에게 체육시간에 공만 던져주면 쉽게 수업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굳이 위험한 활동들을 하지 않고 쉽게 수업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공을 주고 하는 수업이라 하여 아나공체육수업이라고 불리웠다. 십여 년 전 이야기지만 당연한 수업을 놓고도 감사의 인사를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도록 안내하며, 공감능력과 창의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예술적 안목을 키워주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교육을 뒷받침할 그런 수능개편안이 없을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정권에 따라 바뀌는 일회용 교육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련된 교육정책을 기다리는게 무리한 욕심은 아닐터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