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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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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건 봄꽃이 화사해지니 나는 나대로, 반쪽은 반쪽 나름대로 사진을 찍고 있다. 같은 꽃을 사진에 담아도 난 꽃을 최대한 가까이서 담는 반면, 반쪽은 꽃이 핀 나무 전체를 사진에 담는다. 부분만 보려는 나와 전체를 보는 반쪽. 삼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여전히 닮은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많다. 난 동물을 좋아하는데 반해 반쪽은 식물을 더 좋아하는 편이고 여름에 휴양을 떠나려고 해도 난 바다로 가자하는데 반쪽은 계곡으로 가고 싶어한다. 노후에 바닷가마을에서 살고싶다하니 파도가 위험하다며 산자락에서 살자한다. 나는 주로 기계류를 다루는 취미생활을 좋아하여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컴퓨터로 편집하고 작품을 만드는데 반쪽은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다 보니 특이한 식물을 찾아오거나 낚시를 하면서 세월을 낚는다. 심지..
소소한 이야기 날이 흐려 꿀꿀한 날이었다. #1 '삼가 고 이외수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들이 화천에서 군생활하던 시절에 화천 산천어축제장에 들렀다 만난 이외수선생님께선 흔쾌히 사진찍기에 응해주셨고 아들에게 덕담해주시며 화천이야기도 들려주셨던 기억이 있는데 별세 소식을 듣다니... 대학시절, 절친했던 후배로부터 선물받은 이외수 선생님의 책을 읽게되면서부터 관심을 가졌었고 글을 쓰시면서 지역을 위해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는 등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셨던 그 분과 트친을 맺기도 했었는데 건강악화로 인해 투병하시다가 향년 76세로 생을 마감하셨다니 안타깝다. #2 울릉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팔순넘은 친정엄마께서 평생 울릉도구경을 못해보셨다며 한 번 가고싶다 몇 해동안 노래를 부르시기에 명퇴해서 시간많은 내가 함께..
1가구 2주택 보유 1가구 2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주택 한 채를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십 년 전 반쪽이 명퇴하면서 전원생활하고 싶다며 퇴직금으로 작은 주택을 한 채 지었다. 아무 생각없이 정말 작은 집을 지었다. 우리 둘만 살 생각으로 침실 한 칸, 서재 한 칸, 거실과 주방을 갖춘 단순하게 지은 집. 서재를 갖는 게 소원인 나 때문에 서가를 짜넣은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주었고 모임을 좋아하는 반쪽때문에 거실을 넓게 만들었다. 그런데 집을 지은 2년 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시어머님께서 우리 집에서 기거를 하게 되셨다. 인생은 늘 예측 불가한 일들이 발생하다보니 어머님께서 삶의 터전을 떠나오실 줄은 누구도 몰랐다. 결국 침실을 어머님께 내어드리고 나니 우리 부부는 거실에서 자거나 작은 방에..
흰머리에 적응하기 학교에 있을 땐 흰머리에 신경쓰느라 자주 미용실에 들러야했다. 어린 학생들이 흰머리를 보면 깜짝 놀라기도 했기에 흰머리가 보일 만 하면 미용실에 가야했다. 물론 나이들어가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줘도 괜찮겠지만 워낙 아들딸 나이의 젊은 교사들과 있으려니 신경이 쓰여서 염색을 자주 했었다. 명퇴를 하고 나니 굳이 염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하얗게 될 때까지 참는 중이다. 염색을 하면 두피와 머리카락이 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두뇌가 나빠지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다. 사실 나이가 들어서 두뇌가 나빠질 수도 있지만... 흰머리가 많이 보이게 되니 친정엄마께서 안쓰러워하신다. 흰머리 소년, 김용택 선생님처럼 곱게 늙고 싶은 욕심이다. 서점에 책구경을 갔다가 반쪽과 둘이 골라 온 책 한 권. 목..
사진 제대로 찍으려니... 어려서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하는게 더 좋겠다. 중고등학교 때 소풍을 갈 때면 늘 카메라를 들고 갔다. 그 당시엔 우리집에 카메라를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옆집이 사진현상소를 해서 필요할 때마다 카메라를 빌려썼다. 그 땐 필름카메라여서 필름 한 통 값과 사진현상값이 만만치 않았던 때였지만 없는 살림에 맏딸이라고 필름카메라만큼은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셨다. 대학에 들어간 후 아버지께서 카메라를 사주셨다. 물론 가족용으로 쓸 수 있게 산 것이지만... 전공답사갈 때, 동아리 합숙할 때 늘 카메라를 들고가 사진을 찍었다. 예술성있게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찍는 건 잘 했던 것 같다. 교직에 들어오면서 디지털 카메..
내리사랑 결혼한 아들이 배가 나오고 흰머리가 하나 둘 보이는 것이 슬프다.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결혼생활하면서 또 회사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고있는가보다. 생각해보니 나의 어머니도, 반쪽의 어머니도 환갑을 바라보는 자식이 늙어감을 속상해했을 지도 모르겠다. 친정엄마는 딸의 흰머리가 보일 때마다 안타까워했다. 내가 요리 한 가지를 해드릴 때마다 그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대견해했다. 최근에 봄나물을 뜯어다 드렸더니 먹는 나물을 구분할 줄 안다며 신기해했다. "엄마두 참,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래도 엄마에게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자식인가보다. 명퇴했다고 이제 돈 못 벌어서 어쩌냐 걱정. 손녀딸이 대학을 다시 들어갔는데 살 집은 구했냐 걱정. 오남매의 걱정만으로도 모자라 이젠 열 손주들 걱정까지 줄줄이 늘..
신속항원검사 일요일 저녁 먹고 난 이후, 갑자기 침삼키기 어려울만큼 목이 부어 짜증스러웠다. 등과 허리 등은 누가 때린 듯 욱신거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코로나19 증상과 유사했다. 시어머님께선 3일 전 격리해제되셨고 반쪽은 두 번에 걸친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서 출근을 시작했는데 혹시 나로 인해 또 출근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 반쪽과 격리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집에 있던 인후통 약을 먹고 하룻밤을 푹자고 나이 아침엔 목은 덜 아팠지만 근육통은 여전했다. 선별진료소 갈까 하다 선별진료소는 결과가 다음날 나와서 늦기도 하고, 몸살감기일지도 모르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문 열 시간을 맞춰 찾아갔는데 이미 병원 안에 사람이 그득했다. 일반 진료받는 사람, 신속항원검사 받는 사람. 나이든 어르신과 아장아장 걷는 아..
어음에 대한 기억 한 조각 회계관련 공부를 하던 중 자산에 대한 설명을 읽고 이해하려고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는 중이다. 자산이란 기업이 소유한 유형, 무형의 가치있는 것들을 의미한다는데 자산의 종류가 다시 여섯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어음에 대한 설명이 있기에 대학 졸업 후 잠시 몸담았던 중소기업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두 사장이 동업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던 중소업체였는데 늘 경영란에 허덕였던 것 같았다. 두 분이 모두 강남에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던 걸 보면 굳이 경영란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진 않겠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처음으로 해보게 된 그 곳에서 난 어음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그 업체는 자주 어음을 발행했고 그 어음을 내게 들려보내 어음깡(적힌 금액보다 적은 금액의 현금으로 교환하는)을 해오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