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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자존감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읽다보니 나를 깨우치는 대목이 많다. 이 책에 기록된 자존감 높은 학생의 특징 첫째, 자신과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둘째, 학업과 일에 대한 만족감도 대체로 높다 셋째,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넷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다섯째,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견뎌 내는 힘도 강하다 여섯째, 새로운 일에 열정을 가지고 도전한다. 일곱째, 자신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덟째, 유머 감각이 있다 여덟가지 특징 중에 가장 부족한 것은 유머 감각.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땐 재미있는 선생님이란 평을 듣는데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땐 표정이 굳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아이들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나..
미래세대에게 부끄럽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가보다. 보잘 것없는 내 블로그에 최근 몇일간 많은 발걸음이 남겨졌다. 그냥 즉흥적으로 생각을 옮겨적은 것 뿐인데 말이다. 좀 신중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반성도 해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가 발표되던 날, '노부유키의 예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더니 생각지도 못한 반응들에 놀라 감당키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분이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에 대해 "아베 노부유키는 그런 말 한적이 없다" "오버가 넘 지나치다" 등 진위여부도 확인치 않고 글을 썼다고 비난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분들은 요즘 언론 대다수가 진위가 확인되지않은 기사를 마구 쓰는 것에 대해서도 언론사에 항의할까 궁금해진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는 한 아베 노부유키가 그런 말..
마을살리기 교육과정 2년 전, 학교가 있는 마을에 환경을 위협하는 공사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시위를 하게 되었고 학교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교장이 도움요청을 거절했다.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마을에 공사장이 들어서면 학생들에게도 영향이 미칠텐데 그런 상황에서 중립이라니... 십년넘게 이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찜찜했던 것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십년 근무하면 떠날 지역인데 관심가져서 뭘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떠돌아야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던 예전엔 미처 심각하게 고민을 못했던 것이다. 학부모들이 주거지를 물을 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이 곳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은 다른 곳에 내는 현실에 대해서도 미안했고 아이들과 ..
하늘학교로 떠난 후배교사 갑작스럽게 페북 타임라인에 작년에 하늘로 가버린 후배관련 글이 떴다.후배의 제자가 올린 글이었다. 후배의 페이스북에 찾아들어갔더니 고인이 된 지 이미 일년이 되었건만 제자아이들이 못 잊고 글을 남겨두었다. '군대전역했다, 광복70주년 영상만들었다, 생신축하드린다' 등 다양한 글들이 도배되어있었다. 아무 대답도 없는데. . . 대학시절 과후배로 만났을 땐 마치 산적같은 험악한(?)인상이었으나 이야기나눌수록 따뜻한 후배였다. 미발령으로 인해 집회나 시위를 다닐때면 위험하다며 앞에서 먼저 나서던 후배였다. 충남에 올라와서 전교조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유난히 반겨주던 정감있는 후배였다. 발령 못 받고 고생고생하다가 늦깍이교사로 교단에 선 지 불과 7,8년만에 암을 발견했고 3년정도 투병생활 하면서도 늘 웃고 장난..
하릴없이 끄적거림 어릴 때 나는 사내아이들처럼 놀았다. 약했던 체력에 비하면 모순으로 들리겠지만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사내아이들과 골목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잦은 전학으로 인해 친구사귀는 법을 잃었다. 오죽하면 일기장에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다고 썼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와서 학교폭력을 당했다. 그당시 키가 가장 작았던 나는 친구들의 폭력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되었겠지만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참고 견뎠다.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교사가 꿈이었으나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져서 더듬더듬 헤맨다. 앞에서 발표를 할 땐 글자가 안보이고 노래를 할 땐 가사를 빠뜨리고 무용을 할 땐 흐느적흐느적 그랬다. 도..
엄친아 엄친아가 유행어로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가수 이승기씨가 엄친아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했던 듯한데... 지인의 아들이 수능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엄친아보다는 아들 친구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단순히 아들 친구의 엄마이기보다는 대학선배이기도 하다. 선배는 엘리트집안에서 성장했고 배우자역시 대기업임원이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유치원부터 유명한 사립유치원에 보냈고 학창시절 시교육감상과 시장상을 휩쓸만큼 재능있고 똑똑하게 가르쳤던 것 같다. 아들이 중학교 입학하면서 우연히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가 되었고 같은 고등학교를 배정받으면서 양 쪽 가족끼리도 서로 교류하며 친하게 지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아들은 고민하지 않고 원하던 전공에 따라 수시지원한 대학을 선택했으나 아들의 친구..
작은 학교, 농촌 풍경이 좋다. 1999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다가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물론 그 이전 대통령들에게도 편지를 썼기는 하다. 교원정년을 단축했던 탓에 초등교사의 부족현상이 발생하면서 농어촌지역의 초등교사 대란현상이 기사화된 것이다. 젊은 초등교사들이 도시를 선호하게 되어 임용고시에 합격해놓고 농어촌지역으로 발령나면 학교를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둘째아이까지 다 키워놓고 뭔가 일거리를 찾던 나는 그 기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는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나처럼 발령대기 중에 임용고시제도가 생기면서 교사의 꿈이 좌절되었던 중등자격증 소지자에게 기회를 달라고... 물론 그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 이전의 대통령들에게 억을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면 항상 답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발령대기 3년의..
미안해. 아들, 딸! 헬리콥터맘도, 잔디깍기맘도 아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발 우리 아들좀.." 캥거루 엄마에 시달리는 인사담당자들.. http://media.daum.net/v/20150930110109008?f=m 자식을 위해 저렇게까지 나서야하는 엄마들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아무리 들어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렀어야 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지적도 해본다. 2008년에 일교조와의 친선으로 일본에 갔을 때만해도 88만원세대로 불리우는 우리 나라의 젊은이들의 현실을 개탄했었다. 당시 함께 갔던 두 명의 대학생들이 일교조와의 세미나에서 88만원세대로서의 아픔과 괴로움을 토로했던 적이 있다. 그래도 좀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가져보자고 위로를 했었다. 나아질 기미조차 안 보인다. 취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