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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삶 자체가 시인 것을

학창시절 시를 잘 외웠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외우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금새 외워버렸다. 그래서 늘 칭찬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의 느낌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없이 그저 무식하게 외워대기만 했던 듯하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

중학교 때까지도 시를 곧잘 외워서 국어선생님께선 수업에 들어오실 때마다 나를 불러 세우고는 시 한 수를 외워보라 한 다음 수업을 시작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외워버렸던 시 중에서 지금은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또한 그렇게 즐겁게 참여했던 국어수업이 고등학교 들어가서 가장 지루한 시간으로 되어버렸다. 대학입학을 위한 학력고사용 수업이었기 때문일까? 그 탓에 좋아했던 국어과목을 싫어하게 되었고 국어교사가 되기를 포기해버렸지.

지금도 난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한다.  물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독서는 편식을 한다. 가끔은 '국어교사가 되었더라면 ...'하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탁동철 선생님의 '동시가 왔다'를 읽고 있다.

탁동철 선생님을 '글과 그림' 모임에서 한 번 뵌 적은 있다. 물론 말을 건네본 건 아니다. 그냥 그 모임에 아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가볍게 인사를 나눴을 뿐이다. 탁동철 선생님의 다른 책 '달려라 탁샘'을 통해서 선생님의 학교 이야기를 엿보기도 했었지만 '동시가 왔다'를 읽으며 상황상황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적절한 시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 한사람, 강원사대부고 김현진선생님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인권교육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김현진선생님이 가끔 올려주는 시 한 편이 시기적절하게 다가온다.

난 그저 사치스럽고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시들이었는데 내가 알던 시 말고 삶으로 다가오는 시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꾸만 시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당시 좋아했던 시들이 앨범에 꽂혀있는데 예전에 내가 외웠던 시들은 정말로 사치스럽기만 했다.  내가 외웠던 그 시를 쓴 우리나라의 시인 중에 더러는(아니, 어쩌면 대다수) 친일파도 있었으니 그 시들이 담고 있는 의미들이 불순한 것도 있으리라. 일제를 찬양했거나 강제 한일합병을 미화했거나 등등의 내용이 닮겨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외워댔다니...

가끔 아이들과 함께 시를 써보자 하면 아이들은

"시는 짧아야하죠?"

"시는 노랫말처럼 재미있게 지어야하죠?"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시 한 편을 들려줄 뿐이었다.  그저 떠오르는대로 느낌을 살려 써보라고, 살아있는 너희들의 글을 맛깔나게 쓰라고 도움말을 줄 뿐... 실감나게 그 시들을 읽어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책 속에서 탁동철선생님은 상황에 맞는 시들을 들려주시며 아이들과 공감한다. 그런 멋진 시들을 톡톡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닮고 싶었다. 나도 아이들과 나들이를 할 때나 텃밭을 가꿀 때,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때 저런 멋진 시 한 편을 들려주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좀 더 풍부하게 공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하나 꽃피어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이제부터라도 좋은 시를 찾아 몽땅 읽어버릴까...그저 맹목적으로 외우던 교과서의 시가 아니라 삶이 묻어나는 그런 시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