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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나는 왜 살아야 할까?

지역주민을 상대로 철학교실을 열어 강의를 하시는 김용택선생님께서

바쁜 일정이 생겨서 하루의 공백을 메워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다른 교사를 섭외하려다 결국 내가 선생님 대신 강의를 하게 되었다.

막막했다.

선생님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할텐데 생각지도 않았던 철학교실이라니...

하지만 철학이라는게 멀리 있는게 아니고

언제나 내가 아이들과 이야기나누는 내용들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퇴근을 하고 철학교실이 이뤄지는 학교의 컴퓨터실로 갔다.

7시가 되니 한 남자아이와 엄마가 들어왔다.

원래 열명쯤 있다는데 오늘 참석자가 적을 것이라고 그 남자아이의 엄마가 일러줬다.

안 그래도 김용택선생님께서 바쁘신 중에 걱정되셔서 참석자가 적을 것 같다고 문자를 주시긴 했다.

조금 있으니 여자 아이 혼자 들어왔다.

그리고 이후로 남매와 엄마, 여자 아이의 엄마. 이렇게 일곱명이 단촐하게 철학교실을 시작해야했다.

EBS의 지식채널에 나온 여섯명의 시민들1부로 여는 말을 시작했다.

이 여섯명의 시민들에는 1347년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칼레시가 영국에 포위되어 항복하게 되었을 때

칼레시민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처형당하기를 자처한 6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여섯명은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부유한 귀족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난 후 과연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학급경영으로 유명한 허승환 선생님의 학습지를 활용하여 내가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적어보게 했다.

그리고는 함께 앉아있는 일곱 명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가장 설득력있는 사람을 뽑아서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나갈 수 있는 한 사람을 뽑아보라고 했다.

물론 구명보트를 타고 나가는 그 한 사람의 손에 다른 사람의 운명이 달려있으니

반드시 구조대를 데리고 올 수 있어야하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말했다.

아직 키워야할 자식이 있고 봉양해야할 부모가 있어서 꼭 살아야하겠다는 엄마, 

나의 생명은 소중하니까 꼭 살아야하겠다는 남자아이, 

꿈이 많고 행복해야할 이유가 있어서 꼭 살아야하겠다는 여자 아이 등 다양한 이유들이 나왔다.

그러나 200초 안에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에 모두들 선택을 어려워했다. 

이게 실제상황이라면 아비규환이 되었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나서는 행복에 대한 여자 아이의 말을 빌미로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생각할 여유가 있을 때 행복해요"

"친구랑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질 때가 가장 행복해요"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 아이가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엄마와 친구랑 함께 있는 게 행복하다는 딸아이의 의견이 다르다.

그렇다.

행복은 각자의 몫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과 자녀가 행복하다는 순간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그걸 사람들은 잊고 산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가 행복한 줄 알고 아이를 엄마의 소유물처럼,

또는 아이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인 양 착각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과 행복의 크기가 다른 것을..   

그렇게 그 날의 철학교실을 진행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존중해준다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 반 아이들은 부모님께, 엄마들은 자녀에게 각각  편지를 써보라 했다.

서로 편지를 쓴다는 사실을 모른채 쓰도록 했다.

어린이날을 앞둔 오늘, 아이들에게 엄마의 편지를 전달해줬다.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엄마가 이런 걸 언제 쓴거야?"

"나 눈물 나오려고 해"

"와, 우리 엄마 편지가 정말 길다. 글씨도 깨알같아"

"난 엄마 편지를 가보로 간직할거야"

한 아이는 편지를 붙잡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자랑하고 싶은 아이는 엄마의 편지를 친구들에게 읽어줬다.

편지를 받고 느낀 점을 쓰고 싶은 만큼 1분 글쓰기 수첩에 적으라고 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아이는 가장 길게 느낌을 적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미 썼던 편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편지를 받을 부모의 마음엔 어떤 느낌이 있을까?

이렇게 우리반 아이들은 5월의 첫주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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