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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마을과 학교

2012년 이 시골마을의 작은 학교로 부임해왔을 때,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늘 교장과 교감이 둘 다 들어간 학교운영위원회는 평교사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구조였기에 학부모와 교사 간의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이라며 교사들을 압박하기도 하는 교장과 교감도 많았고...

그 당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몇몇 위원들이 학교 뒤 축사를 문제삼아 거론했다. 환경정화구역 내에 있는게 아니냐며 지자체에 민원을 넣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파리가 들끓고 냄새가 장난이 아니긴 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환경정화구역 설정이전에 축사가 먼저 들어선 것이라 법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몇몇 학부모들은 지자체에 고발까지 했단다. 그 탓에 축사주인은 무허가 건물에 대한 세금을 물어야 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어차피 학교와 축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를 선택한 학부모들이었을텐데 조금은 이기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가야하는데 학교가 있는 지역은 노령인구가 많아 학령기 아동을 둔 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인근의 읍지역에서 학교를 선택하여 통학버스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하다보니 학교가 있는 마을에 대한 애착이 적을 수 밖에...

그 이듬해, 축사를 찾아갔다. 취학전 아동이 셋이 있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다.  학교와 축사를 위해서 학교 농장에 퇴비를 주십사 부탁드렸다. 학교와 축사 사이에는 400여평의 텃밭이 있었는데 부임 첫 해에 보니 형편없이 방치되어 있어 텃밭을 활용한 교육활동을 기획하고 싶었다. 축사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덧붙여 텃밭의 고랑과 이랑을 만드는 기계 대여도 부탁을 드렸더니 농기계를 가지고 있는 다른 분을 소개시켜주셨다. 덕분에 텃밭에는 소똥으로 퇴비를 하고 EM을 뿌려주고 농기계로 밭고랑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 좋게 되었다.

400평이라는 땅이 참 넓었다. 축사와 가장 가까이에는 뽕나무 30그루를 사서 심었다. 나무시장에 직접 가서 튼실한 30그루를 사다 아이들과 함께 심으며 3년 뒤에는 결실을 볼 수 있다고 했었는데 그 나무를 심은 아이들은 뽕나무 열매를 맛도 못 보고 졸업하는 슬픈 운명이었다. 덕분에 지금 아이들이 봄이 되면 입술이 새카맣게 물들도록 오디따먹는 재미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텃밭, 초록농장은 원하는 학급마다 구획을 나눠 분양했고 학부모들에게도 신청을 받아 분양해줬다. 학교 행정실 아저씨와 버스기사도 함께 농사를 지었다. 거름이 좋아 땅에 심은 모든 작물이 무성하게 열매를 맺었다. 농사초보였던 내가 마치 유경험자처럼(사실 시어머님과 인터넷, 책자들을 뒤지며 정보를 찾았는데) 동료들과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농사짓는 작물과 시기, 방법 등을 알려주며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축사의 퇴비 기증과 농기계 대여 등이 마을 분들의 도움을 얻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마을의 여러 농장에 체험거리도 부탁을 드렸다. 축사의 젖소들에게 짚먹이기와 송아지 우유먹이기, EM으로 축사냄새 줄이기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셨고 딸기농장에서는 아이들이 나들이 한바퀴 돌고나면 팔 수 없는 딸기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내주시곤 했다. 그리고 딸기농장을 걷어치우기 전 딸기따기 체험도 허락해주고...

작년엔 아이들이 김장해보고 싶다하여 이장님께 부탁드려 어르신들이 학교로 오셔서 하루 선생님을 해주시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김장을 가르쳐주고 할아버지는 짚으로 새끼꼬기 등을 가르쳐주셨다. 또한 아이들은 직접 담은 김장과 수육으로 마을 경로당에 가져다 드리며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학교 앞 경로당에 아이들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재롱을 보여드리러 가기도 했었다. 물론 경로당에 가도 어르신들이 별로 안계신 실정이지만...

이렇게 마을과 학교가 함께 가는게 교육의 좋은 방향인 듯 싶다. 이렇게 함께 하다보면 학교가 있음으로 해서 마을이 살아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즘 트렌드처럼 이야기되는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초점이 그런게 아닐까? 학교근처로 이사오고 싶게 학부모들이 마을을 사랑하게 되었음 좋겠다. 교장과 교감도 마을이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마을의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봄이 되면 텃밭의 퇴비랑 밭갈이 문제 등을 교사인 내가 알아보러 다니는 것보다 교장과 교감이 해줬으면 하는 부탁을 했다. 마을어르신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도 이장이나 동문들과 이야기해서 마을의 도움을 얻기도 하고 마을에 도움을 주기도 하라고 의견을 냈었다. 그러나 교장과 교감은 그런 나의 건의를 무시해버렸다. 김장을 도와주신 어르신들이 학교 강당을 사용하고 싶다는 부탁도 거절했었다. 

그 탓에 올 해 학교 텃밭의 농사준비는 힘겹게 되어가고 있다. 교감과 행정실 아저씨 두 사람만의 노동으로 작년 밭농사 뒷처리를 하고 고랑도 못만들고 대충 학급에 나눠주겠다고 한다. 난 올 해, 이 학교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에 텃밭 농사도 관여할 수 없다. 단지 내 학급 아이들과의 생활만 충실히 할 거라서 우리 학급 분량을 받으면 그것으로 아이들과 밭농사를 지으면 그 뿐이다. 담당자에게나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조언해주었다. 농부의 딸이라 농사짓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부장도 아무 말이 없다. 

교육공동체,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와 지역주민이 함께 하는 교육활동. 어려운 이야기인가? 

눈과 귀를 막고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올 해 초의 다짐이 자꾸만 무너지려고 한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