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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동유럽여행 이틀째ㅡ프라하의 봄을 찾아서

눈을 떠보니 밤 11시. 아직도 밤이군.
다시 눈을 감았다가 문자가 와서 눈을 떠보니 오전 2시쯤.
나의 반쪽에게 통화를 시도했는데 받질않는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않다. 시차적응이 안되었나보다.

어제 포트에 끓인 물(호텔에 정수기가 없고 욕실물 끓여 마시라기에)을 마셨더니 시큼하다. 물맛이 별로군. 어제 마신 맥주 맛도 시큼하더니. . .

샤워를 했다. 욕실바닥에 머릿카락 쓸어내려고 바닥에 물을 뿌렸는데 아뿔사 배수구가 없다. 욕조안에만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타올로 닦아내어 물을 짜내기를 반복. 이 시각에 뭐하는 짓이람.

행정사로부터 문자가 MMS로 도착했다. 읽을 수 없었다. 뮌헨도착해서 가장 답답한 것이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은 대부분 유료다. 해외에서 데이타를 사용하다 요금폭탄 맞는다기에 아예 데이터 차단했더니 무지 불편하다. 행정사에게 답문을 했다. 짧은 것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관내내신 공문왔단다. 22일까지 내신서쓰라고. . .
전보내신 안쓰려고 떠나온 것인데 살짝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이제와서 쓸 수도 없다. 도장을 두고 왔으니 말이다.
잠은 다 잤다. 가져온 책을 읽고 아들이 짜놓은 일정보며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전6시, 아들딸을 깨워 일정을 의논했다. 프라하로 일찌감치 이동하기로 하고 서둘러 중앙역으로 출발.
오전8시, 출근길을 재촉하는 발걸음과 쓰레기치우느라 바쁜 청소차, 종소리(?)울리며 지나가는 트램(유럽의 주요 대중교통수단)을 보며 뮌헨 중앙역으로 들어섰다.

엇저녁 타고 들어온 도시외곽을 연결하는 S-bahn과 다른 나라로 연결되는 다양한 유레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중앙역에 들어서니 고소한 빵내음.
이지역에서 유명한 프리챌을 포함한 세 종류의 빵을 사고 물 한 병을 샀는데
'어라! 영수증에 다섯가지 항목이 적혀있다' 빵집주인에게 물었더니 물병값 25센트란다. 우리돈으로325원정도.
유레일 패스에 개시도장을 찍고 타야할 기차에 올라탔다. 1등석패스인데 1등석자리가 많지않고 칸막이 형태라 중국청년과 함께 앉게 되었다.
9시1분에 뮌헨출발해서 프라하에 14시 43분에 도착하게 되는 장거리기차다. 프라하에 버스로 가면 한시간빠르게 도착하지만 버스를 별로 안좋아해서 기차로 가는 것이다.

프라하!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였던 둡체크가 민주화로의 개혁을 시도했다가 소련을 포함한 바르샤바 조약국들에 의해 좌절되었던 사건인 '프라하의 봄'의 흔적을 찾는 나와 드라마'프라하의 연인'을 기억하는 아들딸. 생각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았던 프라하로 Go
창밖에 펼쳐지는 도시 외곽의 넓은 대지와 주택들은 그저 우리네 기찻길옆 마을풍경과 비슷한 정겨움을 준다.
기차승무원이 오더니 표를 보잔다. 그런데 중국청년에게 영어할 줄 아냐, 아님 독일어할 줄 아냐를 묻는다. 그 청년이 모른다고 답하지 열차칸의 숫자 1과 청년의 표에 적힌 2를 가르친다. 청년이 잘못 탄 것이다. 청년이 먼저 앉아있었는데 우리가 내쫓은 모양새다.

 

체코국경을 들어서자 체코경찰과 경비견이 열차에 오른다. 5년전엔 유럽에서 국경을 넘어다녀도 본 적없는 광경이다. 승무원도 바뀌었다. 바뀐 승무원이 표를 다시 검사했다.
열차에서 먹거리파는 할아버지의 수입을 올려드리려고 했는데 국경을 넘어서자 먹거리파는 판매원도 바뀌었다. 아쉬워라.

유리창에 빗방울이 투두둑 부딪힌다.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군. 프라하역에 드디어 도착. 헝겁으로 된 캐리어 하나는 일회용 우비를 씌우고 ATM기에서 체코화폐로 2000코룬(우리돈 9만7천원)을 인출한 후 숙소를 찾아 걸었다. 인포메이션을 아무리 찾아도 안보인다. 검색도 못하고 에궁.
숙소는 카를교부근이라 프라하중앙역에서 충분히 걸을만하다. 우선 바츨라프광장을 찾아야했다. '프라사의 봄' 사건으로 인해 소련군이 군대를 보냈다는 참혹한 현장이었다는데 지금은 프라하 구시청사 앞길로 꽤 번화한 거리란다. 바츨라프는 카를4세의 본명이기도 하고 아들 바츨라프4세의 황제명칭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일까 혼자 생각해봤다.

1989년 바츨라프 하벨이 공산주의로부터 무혈, 비폭력 혁명(벨벳혁명)을 이끌어내고 '프라하의 봄'사건으로 밀려났던 둡체크가 바츨라프 하벨 행정부의 연방의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무려 19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이후 199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바츨라프 하벨.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광장이 아닐까? 벨벳 혁명같은 비폭력 혁명으로 지금의 체코의 민주화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니 우리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난 무엇을 해야할까?

여기서 점심먹을 식당을 찾아 잠시 헤매게 되었다. 체코 현지식으로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맛집이라는데 지도검색이 안되니 찾는게 쉽지않았다. 비는 오지, 캐리어 두개를 덜그럭덜그럭 끌고 다녀야하지 짜증이 밀려올 무렵 드디어 찾아냈다. 'V cipu' 스타로프라멘(29코룬)이라는 체코맥주와 딸이 먹고싶다는 크네들로 젤로(체코식 찐빵과 돼지고기:125코룬), 아들이 먹고싶다는 굴라쉬(198코룬), 체코 현지식에 문외한인 나는 야채샐러드를 주문했다. 사진 윗쪽의 크네들로 젤로는 폭신폭신한 찐빵위에 양파절임을 올리고 푹 삶은듯한 돼지고기를 올려먹으니 먹을만했고...
사진 아래쪽 굴라쉬는 장조림한 쇠고기느낌(?)인데 빵을 찍어먹으면 되지만 나의 야채샐러드는 최악이었다. 야채에 곁들여나온 치즈는 소금덩어리인듯 심하게 짰다. 체코사람들이 짜게 먹는지 너무 짜서 결국 샐러드에서 치즈는 빼고 먹어야했다.

서유럽여행 땐 돈 절약한다고 가능한 싼 빵 한조각이나 한국에서 가져간 컵라면과 햇반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아들딸의 불만이 현지식을 못해본 것. 그래서 이번엔 현지식에 도전하기로 했던 것이다. 근데 체코현지식이 대체로 짜다는 것과 1인분의 양이 우리가족에겐 많다는 것.

그렇게 점심을 먹고 숙소를 찾아 또다시 헤맸다. 지도를 얻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프라하 풍물이장인 하벨시장이 문닫을 시간이 가까와오기에 서둘러 찾아야했다.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려고 말이다. 동유럽의 겨울은 낮이 무척 짧아 6시면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는단다.
겨우 찾은 하벨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드디어 과일을ㅎㅎ. 그런데 시장아저씨에게 정말 미안한 일은 우리가 잔돈이 없어 큰 돈으로 거슬러달라고 해야했던 것. 고의는 아니었어요.

어둑어둑해졌다. 드디어 숙소발견.체크인하는 리셉션의 직원이 "Do you want cd docx?"라고 묻는 듯했다. 필요없다고 했더니 자기 말을 이해 못하냐며 종이에 90크룬을 써서 보여준다. 딸과 둘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밖에 있는 아들까지 불렀다. 한참 설명을 듣다보니 내가 들은 cd docx는 city tax의 발음이었다. 몰랐는데 1인당 30크룬씩 의무로 내야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Do you want~~?"라고 물었냐고. . . 체크인하고 야경보러 나온 시각이 저녁 7시. 캄캄하다. 비새는 운동화신고다닌 아들의 신발부터 사야했다. 또다시 걸어서 구시가지광장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천문시계탑이라는데 매시 정각에 인형이 나와서 뭔가 보여준다고 몰려든단다.

위의 시계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것이고 아래 시계는 보헤미안인들의 열두달모습을 담아낸 것이라 한다. 정각에 보여진 인형쇼는 아주 잠깐. 그래서 보려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허탈감에 헛웃음과 박수갈채를 날렸다. 기대하고 볼 게 아니라고 들었기에 별 생각없었는데 사람들은 참 많이도 모였다. 간간히 한국말이 들리는 걸 보니 역시 방학인가! 이곳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소매치기당하기 십상이라던데 조심해야지.
아들의 운동화와 딸의 목도리를 사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카를교에 들러 야경사진 몇컷.

세계사시간에 배웠던 신성로마제국의 카알대제를 체코식발음으로 카를이라고 하나보다. 14세기 전성기를 가져왔다는 카를황제의 동상과 카를교 건너기전 매달린 자물쇠들(세계 어딜가도 있는건가! 사랑의 자물쇠).
카알, 카를, 찰스, 샤를 등 한사람을 부르는 여러 언어의 사용과 바츨라프 명칭에서 유추해볼 때 프라하에서 카를황제의 존재감은 엄청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유학파, 신성로마 황제칭호를 얻어낸 것, 프라하대학을 지은 것, 전성기를 가져온 것 등 많은 업적이 있다. 좀 더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오늘 내가 걸은 거리는 4.96km. 프라하 역에서 바츨라프 광장을 거쳐 하벨 시장을 통과하며 숙소까지. 그리고 다시 숙소에서 천문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광장까지 걸어나갔다 돌아온 게 전부다. 목표량 미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