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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남의 교육과정이 아닌 내 것 만들기

2016학교교육과정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사범대학에서 4년동안 배웠어도 교육과정에 관심을 깊이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교과서의 진도를 빨리 나가기 위해 내가 어떤 방법을 써야할 지, 어떤 자료를 활용할 지 고민했던 기억은 있지만 교육과정에 대해서 고민했던 기억이 없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초등교사로 교단에 서게 되면서 3월초만 되면 학교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은 책자로 대충 설명해주고 학년학급교육과정을 세우라고 관리자들은 독촉하는 모습을 해마다 경험했었다. 누군가 교육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 적은 없었고 인터넷 상에 떠도는 다른 사람의 교육과정을 대충 내려받아 내가 담임하는 학급 실태를 반영하여 약간 수정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작성한 교육과정을 학교장은 살펴보겠다고 모두 수합해서 가져가 열심히 읽고 빨간줄 그어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수정하라고 돌려준 기억도 있다. 한 두쪽도 아니고 200쪽 가까이 작성되어 두툼한 교육과정책을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캐비닛 교육과정이라고 부른다. 고작 결재받기 위해 만들어지고 일년이 지나면 용도폐기되는 그런 교육과정. 새학년을 준비하면서 미리 교육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봐야하는데 그런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도 겨우 일주일이다.

얼마전 다녀간 '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의 저자 정성식 교사는 교육과정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를 물었다. 내게 있어서 학교의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이 작성해서 배포하면 일반 교사들은 학사일정과 교육과정 편제 시수 등만 확인하고는 2월 20일 이후에 정해진 학년에 맞게 어디엔가 올려져있는 학년교육과정을 다운받고 3월초에 학급실태를 조사해서 3월 말이나 되어야 학급교육과정이 만들어지게 되는 일을 십 여 년동안 반복해왔던 일이다.. 그나마도 만들었다고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리자의 결재를 얻어야 적용할 수 있다며 교사들 모두의 교육과정을 수합하여 교감 결재 받는데 며칠의 시간이 소요되고 퇴짜맞으면 다시 수정해서 결재를 기다리고 그렇게 교감의 결재가 끝나면 교장실 테이블에서 며칠동안 묵고 있어야한다.

그렇게 우리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개월동안 초중등교육법 제23조 1항에 나와있는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한다'라는 조항을 무색하게 만들어왔다. 결재없이 어떻게 학급운영을 하냐고 항변해보기도 하고 2007교육과정부터는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인데 어찌하여 처음부터 완성된 교육과정을 내라고 하냐고 따져묻기도 했다. 또한 인사작업을 빨리 해서 교내 인사를 한 달전이라도  완료해주면 학년학급교육과정을 작성하기에 무리가 없지 않겠냐고 제안도 했다. 그러나 학교현장은 여전히 교육과정때문에 몸살이다. 일년동안의 소산물을 가지고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일년동안 운영을 가상하여 책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정신력과 시간을 소비하는 작업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시교육청 차원에서 교육과정 슬림화를 제시했다. 100쪽이내의 학교교육과정을 작성하고 꼭 필요한 내용만으로 채우라고 기본 틀을 제시하면서 교육과정 작성이 좀 수월해졌다. 물론 여전히 교육과정 작성에 올인하는 학교가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 학교는 얇아졌다. 그러면서 교육과정이 내 것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그렇지 않은 가보다. 아직은 모두의 교육과정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겠지.

내년 교육과정을 위해 협의회를 해야하고 올해보단 더 얇게 그러면서 알차게 교육과정을 짜봐야한다. 지금껏 다른 교사들도 나처럼 학교교육과정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공유물이 될 학교교육과정을 만들어야만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본질찾기에 한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학년학급담임배정도 일찍 마무리하고 싶다. 그래야 각자의 학년학급에 맞는 교육과정을 구상할 여유시간이 확보되지 않겠는가!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년학급교육과정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댈 시간도 필요하다.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연수를 받아보고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현장교사의 경험이 담긴 책들을 읽어보다 보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나만의 교육과정을 짜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 실감하게 된다. 간혹 다른 교사들의 재구성을 따라하려고 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동일학년을 두 해쯤 연속으로 하다보니 어떤 주제로 어떻게 묶어내는 것이 내 학급 아이들에게 효과적인지, 시간 여유를 얻을 수 있을지 보는 안목이 생기는 것 같다. 성급한 결론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이 단순히 교과끼리의 통합이거나 억지로 짜맞추는 통합이 아니라 학년발달수준과 지역성에 맞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교육과정 재구성조차도 미리 짜여진 것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학교 상황이나 지역여건, 담임할 학생의 관심과 흥미 등 실태에 따라서 역동성 있게 만들어져야한다고 페북에 올린 글을 퍼왔다. 우리가 그동안 오류를 일으켰던 건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것은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만들어진 교육과정'이었다는 사실이다. 교사가 학생을 만나기 전에 이미 교육과정을 재구성해놓고 교사의 입맛대로 학생을 이끌고 간다는 것. 이조차 배움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르침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해(함영기)

학년학급교육과정의 큰 틀을 정해놓고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향에서 세밀한 내용들은 일년을 함께 살아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한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 될 수 있다는 함영기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다시 한 번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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