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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삶

작은 학교, 농촌 풍경이 좋다.

1999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다가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물론 그 이전 대통령들에게도 편지를 썼기는 하다.  

교원정년을 단축했던 탓에 초등교사의 부족현상이 발생하면서 농어촌지역의 초등교사 대란현상이 기사화된 것이다. 젊은 초등교사들이 도시를 선호하게 되어 임용고시에 합격해놓고 농어촌지역으로 발령나면 학교를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둘째아이까지 다 키워놓고 뭔가 일거리를 찾던 나는 그 기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는 대통령께 편지를 썼다. 나처럼 발령대기 중에 임용고시제도가 생기면서 교사의 꿈이 좌절되었던 중등자격증 소지자에게 기회를 달라고... 물론 그 답변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 이전의 대통령들에게 억을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면 항상 답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발령대기 3년의 세월에 대한 성의없는 답변들이었다.

편지에 대한 답은 아니겠지만 우연찮게 강원도와 전라남도에서 중등자격증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초등보수교육을 받을 대상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어촌지역이 비교적 많았던 지역에서의 소식을 듣고 대학동기 셋이서 두 개의 지역에 원서를 냈다. 어디를 가도 좋을 나이라 생각했다. 아이들 둘 데리고 농어촌에서 살더라도 교사의 꿈을 이룰 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묻지는 않았지만 어떠랴 싶었다. 결국 전남에서 초등보수교육 대상자 임용시험을 보았고 1년 반의 보수교육을 거쳐 초등임용고시를 보기까지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렇게 나의 교직생활은 시작했다.

임용고시 합격 후 근무지희망을 적을 때 어느 섬지역이든 좋다고 했더니 섬근무는 승진점수가 높아 아무나 못간다는 인사담당장학사의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땅끝마을로 보내달라고 했다.

"가족은 어찌하고 땅끝을 가겠다는 거죠?" 장학사가 물었다.

"아이들은 함께 데리고 있을 것이고 충남에서 근무하는 남편은 도간교류로 내려오기로 했어요."

"전남과 충남 간 교류는 어려울 겁니다. 같은 농어촌끼리는 교류가 잘 안 되거든요."

"그럼 어쩌죠?"

그렇게 해서 목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와 두 아이는 아무 연고도 없는 목포에서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3년 반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꾸준히 도간교류신청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주말마다 기차에 시달려 목포에 내려오던 남편이 지쳐갈 무렵 내게 임용고시를 다시 보라는 제안을 해왔다. 현직교사로서는 임용고시를 볼 수 없었던 때라 결국 근무하던 학교에 사직서를 내고 충남에서 또 한 번의 임용고시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30학급, 67학급, 20학급, 8학급. 지금까지 근무한 학교의 규모이다. 첫 발령이후 큰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처음으로 이 작은 학교에 지원하여 오게 된 것인데 이 학교로 온다고 할 때 친분있는 동료들은 말렸다. 작은 학교는 일이 많고 힘들거라고 말이다. 몇 년 전엔가 작은 학교 발령받고 울었던 동료가 있었다. 대규모학교에서는 능력없다고 일을 안해도 괜찮았는데 작은 학교 오니까 이런저런 업무를 떠넘기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쓸데없는 일은 안하면 되지 뭐.

대규모학교에서는 교사 한 사람이 업무 한가지씩을 맡아 각자의 업무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다 보니 담임교사 입장에선 업무량 과다였다. 소규모학교에서는 교사 한 사람이 대규모학교의 대여섯 가지 업무를 맡아야하다보니 맡은 업무를 모두 추진하기보다 중요한 것만 선별해서 추진해도 될 듯 했다. 그래도 많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안하다보니 업무과다라고 느끼진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어려움은 교직원 수가 적어 어떤 행사를 할 때, 특히 배구를 할 때 빠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같은 분위기를 원하다보니 서로 의견이 맞지않아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할 수 없이 동의하고 지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좋다. 시골학교에서 근무하면 자연을 벗삼아 좋고 아이들이 순수해서 좋다. 교과서로만 보는 게 아니라 들로 산으로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를 나가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시를 써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어 좋다. 모르던 생태수업을 하게 된 것도 다 이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였다.

스마트교육을 반대하는 내게 누군가 묻는다.  혹시 스마트기기사용을 잘 못해서 두려워하는게 아니냐고... 그건 날 잘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컴퓨터실에 아이들 몰아넣고 타자연습이나 시키고 인터넷으로 자료검색하다가 시간 남으면 온라인게임을 허용하는 그런 교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알고있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뭔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게 아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능력은 있다. 아들 딸이 컴퓨터 살 때도 필요한 사양과 탑재된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부족한 건 설치해줄 수 있을 만큼 관심이 많다. 컴퓨터가 고장나면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해결하려고 끙끙대면서도 결국 해결하고야만다. 나만큼만 스마트교육해봐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기기중심교육이다. 기기중심 스마트교육을 반대하는 것이지 스마트교육의 원래 취지를 반대하는게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생태스마트교육. 생태환경과 스마트교육의 접목이었다. 다소 무리한 주장이라는 동료들도 있지만 생태교육이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 자연, 스마트환경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전해나갈 수 있는 교육, 그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교육이었는데...

학교에서 나와보니 가을이 눈앞에 있다. 시골학교 교사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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