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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삶

명절 이야기 하나

어렸을 때 명절은 집안 어른들 만나서 용돈벌고 할아버지 묘에 성묘가고 그저 그랬다. 아버지께선 가난한 집의 외동이셨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제사지내는 것이나 성묘에 그다지 찬성하진 않았지만 할아버지 묘에 인사드리러 가는 정도는 허용하셨다. 

모태신앙이었던 나 역시 제사상에 절하는 것과 무덤에 절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제사를 부정하게된 것도 사실 기독교의 영향이기도 하여 결혼을 하면서 친정에서는 친정의 문화를 따르고 시댁에서는 시댁의 문화를 따르기로 했다. 결혼식을 올릴 때,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이 나의 의견을 들어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해가면서 살아야하지 않겠나!

친정어머님의 완강한 주장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가야하는 남편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기에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한 불합리함도 나역시 견뎌내야했다. 

제사, 얼굴도 모르는 분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데 지나친 비용과 시간이 낭비된다고 느껴졌다. 먹지도 않을 제사상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고 실제 오시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밤중에 혼이 오실 거라며 밤 열 두시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 등이 이해를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조율시이, 어동육서 등 알지 못하는 상차림과 여자들만 음식만드느라 바쁘고 남자들은 놀이하고 있는 모습도 낯설었다. 바쁘게 송편빚고 있는 술안주 해오라 주문하는 시아버님이 야속한 적도 많았다. 차례지내는 방에 여자들은 들어오지말라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차례를 지내고 오는 것도 ...그렇게 명절 아침식사는 점심시각이 가까와서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사진 출처 : 네이버)


진보적 성향이라고 믿었기에 남편에게 계속 이야기를 하며 조정을 해나가며 상차림이나 제사지내는 시간에 대한 변화는 있으나 아직도 조상숭배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조상숭배는 우리의 전통이기에 전통을 지켜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운 전통이라면 지켜야하지만 그 전통이라는 것이 고유한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냐고 의견을 피력해보지만 먹혀들지 않는다. 

또한 결혼해서 명절때마다 남편과 다퉈야했던 것은 친정에 가는 것때문이었다.나는 4녀 1남의 맏딸이었고 결혼했을 무렵 동생들은 명절에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설과 추석,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먼저 가서 상차림을 하고 명절 당일이면 꼭 친정에 가야한다고 남편에게 다짐을 받았건만 집성촌에 있던 시댁에 명절이면 찾아오는 일가친척 손님맞이와 집안계모임으로 친정가는 시각은 일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부모님께선 친정에 꼭 가야하냐고 명절때마다 한마디씩 하셨다. 3남 1녀 중 둘째인 남편 또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형도, 동생도 처가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꿋꿋이 가야한다고 고집했다. 그 때문에 남편은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먹듯이 처가로 발길을 향한 게 벌써 이십여년이 지났다. 여전히 쉽지 않은 발길이다. 

남동생이 결혼하고 나니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여동생들은 모두 명절 오후에 모이지만 남동생은 명절 오후에 처가에 가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명절 중 한 번은 처가에 먼저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안된단다. 남동생의 처가에도 딸들이 모이는 때는 명절 오후라고...하는 수 없이 자매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명절때마다 올케와 조카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시아버님과 친정아버님 모두 돌아가신 지금도 명절이면 쉽지않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우리 아이들도 곧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룰텐데 명절에 고민이면 어쩌나?

아들이 "엄마, 명절이 없었음 좋겠어."여자 친구가 있는 아들말이 일리가 있다. 벌써부터 걱정스러운 가보다. 가까운 미래에 며느리를 맞이하고 사위를 맞이할텐데 명절마다 겪어야하는 고통이 자식세대에 계속되기를 원하진 않는다. 

우리 민족이 지녔던 명절의 의미가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제는 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딸자식도 자식인데 아들중심으로 명절을 보내다보니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난다. 시월드니 처월드니 다툼의 소지가 있는 명절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재정립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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