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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삶

초등교사로 산다는 것은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들 중 한 권의 책 첫머리에 초등교사에 대한 세가지 선입견에 대한 글이 있다.

첫째는 초등교사에게 전문성이 없다는 것,  둘째는 초등교사가 쫀쫀하다는 것, 셋째는 초등교사가 순진하다는 것.

과연 그럴까?

초등교사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포근했던 여자 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선생님이 좋아서 초등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5학년 때 만난 남자 선생님은 지금도 성함이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이 깊게 남아있다. 글을 쓰기도 하셨고 당시 교육방송에도 나가셔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었다. 그 때, 우리 반 교실은 학교도서실이었다. 교실이 모자랐기 때문에 도서실 한 켠에서 수업을 해야했고 늘 책을 나르는 심부름을 했어야했다. 그런 덕택에 책을 많이 읽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두 분의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교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걱정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체력이 약해(지금은 아무도 안 믿는 말이지만) 체육수업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가까운 곳에 걸어가는 소풍도 내 발로 간 적이 없다. 3학년 때인가, 줄넘기 50번하고는 다음날 아버지가 안고 학교로 데려다 주신 기억이 있다. 그 당시는 결석하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아파도 학교는 가야하는 곳으로 생각했었으니까...그렇게 저질체력으로 초등교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중학교에 올라오니 과목별로 선생님이 달랐다.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마다 나를 불러 시 한 편씩을 낭송하게 했다. 시 외우기를 좋아했던 까닭이었다. 초등교사의 꿈을 버리고 중등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한 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면 되니까 체육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것이 꿈을 바꾼 이유였다. 대학입학을 결정할 즈음, 중등교사가 되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전공과목은 국어가 아닌 영어였다. 그런데 고3담임 선생님께서 안정권인 전공으로 입학한 후 전과하면 된다고 하향지원을 시켰다.

대학입학하고 보니 내 생각대로 살아지는 세상은 아니었다. 결국 대학졸업 후 발령을 받지 못했고 발령대기 3년만에 임용고시라는게 생겼다. 교사의 꿈을 접었다. 좁은 문을 뚫고 경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들을 떨쳐내야 발령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고보니 그냥 포기해버렸다.

서울의 중기회사에서 경리일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으나 가르치는 일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있어서 학원강사, 학습지 교사, 과외 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12년을 학교밖에서 일하다가 1999년 전남과 강원도에서 초등교사가 부족하여 중등교사자격증을 가진 미발령자 대상으로 초등에 임용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을 열어주었다. 전남에서 초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초등교사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사범대학에서 배운 내용과 교육대학에서 배운 내용은 천지차이라고 느껴졌다. 사범대학에서는 전공과목만 가지고 세분화하여 깊이있게 배웠는데 교육대학에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과목에 대해 적용시킬 수 있는 교수법들이 제각각이었지만 재미있었다. '어려서 가졌던 초등교사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12년의 세월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인데...'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도 어찌보면 12년동안 학교밖의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을 것이라는 스스로의 위로를 하기도 했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1년 반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오히려 중등교사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수십 쪽의 교과서분량을 한 시간내에 가르쳐야하는 중등교사보다 두 쪽의 그림을 보며 발달단계에 맞는 방법을 고민하여 가르치는 초등교사여야 한다. 책만 들여다봐서는 가르칠 수 없었다. 알맞는 자료를 찾아야하고 자료를 적용시킬 방법을 찾아야하고 아이들의 상황에 맞게 투입시킬 시기를 알아야 가르칠 수 있었다.

초등교사는 쫀쫀할 수 밖에 없다. 아침 등교하자마자 조잘조잘 아이들의 입은 쉬지를 않는다. 감추어야할 집안 일에서부터 친구들 일에 이르기까지 쉬지않고 이야기해댄다. 어찌보면 고자질인 것을 다 들어주고 끄덕끄덕 해줘야한다. 그러다 보니 교사마저도 아이들과 똑같이 닮아가는 것 같다.

초등교사는 순진하다. 순진하다는 말이 어리석음을 동반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속아넘어가고 남의 말에 가볍게 솔깃해한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과의 세월이 오래될수록 아이들의 말에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함께 웃고 울고 화내고 하는 시간들 속에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아들과 딸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냥 가르치기만 하라면 교사가 되고 싶다고...

우리 나라의 교사는 전 세계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라고 들었다. 존경받는 다는 것과 높은 급여(?), 안정된 직장이 보장된다는 것이 이유란다. 그럼에도 아들과 딸이 교사가 되지 않은 까닭은 마냥 가르치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곁에서 늘 보았기 때문이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초등교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꿋꿋이 이겨내고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내어 교육의 본질을 지킬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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