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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자녀교육

딸이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에 함께 갔다. 

쥔장은 내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딸을 어떻게 키웠기에 그렇게 대학을 잘 가느냐고 묻는다. 

대학을 잘 간다는 것의 의미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내가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딸이 꿈을 찾아 스스로 알아서 갔다"고 했더니

자기가 만난 명문대를 보낸 엄마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답한다고 했다. 

자녀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않은 자녀교육법이라며...

 

예전부터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 아니 가문의 영광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었다. 

아들과 딸에겐 친가나 외가 모두 할아버지의 재력은 없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무관심이 아니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인 난 방임에 가까운 자녀교육을 펼치고 있었고

옆집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으며,

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을 통로도 없었을 뿐 아니라 대입정보를 찾아볼 노력은 더더군다나 하지 않았다. 

 

아들과 딸이 꿈을 갖게 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수시입학제도가 있어서 수시원서를 몇 군데 넣었다. 

당시 신설고등학교 출신이라 수시에서 불리한 점도 있었긴 하지만

외교관의 꿈을 실현시킬 대학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지망했을 뿐이다. 

정시도전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수시합격한 대학에 그대로 입학했다. 

가끔 반쪽은 정시도전을 해보지않은 데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운명은 그렇게 정해졌다. 

그리고 지금 외교관의 꿈은 접었다.

어려서부터 공부에 전혀 흥미가 없었던 딸(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못찾아서였을 거라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재수학원의 도움으로 첫번째 대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일타강사를 꿈꾸며 대학 3학년 때부터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학생들 수능지도하면서 욕심이 생겼는지 수능에 다시 도전했고

아주 어릴 적 꾸었던 꿈을 이제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발판을 내디뎠다. 

물론 6년의 공부를 끝내고 자격시험까지 통과해야 꿈이 완성되는 것이지만...

 

코로나 19로 입학식을 못하는 대신 학교에서 택배로 보내 온 입학키트를 

함께 개봉(요즘 아이들말로 언박싱)하자면서 스스로를 뿌듯하게 생각하는 딸, 

어려서부터 사회성이 부족해보였던 딸이 두번째 대학에선 적극적으로 동기들과의 관계맺는 모습 또한 대견하다.

엄마로서 아들과 딸의 성장과정에 도움을 준 것을 굳이 꼽는다면,

아들과 딸이 매일 아침밥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줬다는 점.

책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눌 기회를 가졌다는 점. 

또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하고싶을 때까지 그냥 바라봐준 점.

 

아들 딸의 인생과 내 인생은 별개라고 생각하기에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이 자신의 꿈을 향해 스스로 길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늘 응원을 보낼 뿐,

참견도 개입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잘 자라준 것에 고마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