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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웃고 떠들고 싶은 아이들

늘 발견하는 일상들 속에서 행복한 삶을 고민해본다.

#1

유모차를 밀고가던 젊은 엄마가 아기의 미소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찰칵’‘찰칵아기의 미소를 담아두느라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아기와 엄마의 미소가 아기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미래의 언제까지나 끊이지 않기를...

 

#2

벤치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작은 여자아이(너댓살쯤?)와 아빠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며 반응하는 아빠의 모습이 정겹다. 아이는 높임말을 쓰면서 아빠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투정섞인 아이의 말에도 장난스럽게 받아주며 나누는 다정한 대화가 아이가 어른이 되는 날에도 계속될 수 있기를...

 

#3

출근길에 농로를 걷던 반려견과 아주머니. 차를 발견하고는 아주머니와 반려견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피하려한다. 아주머니가 반려견의 목줄을 잡아끄는데 반려견은 자신의 방향으로 아주머니가 오기를 바라는 눈치다. 아주머니가 이겼다. 여느때같으면 아주머니와 반려견은 같은 방향에서 차를 비켜 서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4

TV가 켜져있는 매장에서 국회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각자의 주장을 고집하는 모습이 나온다. 한 아주머니가 맨날 싸우는 국회의원들 꼴보기 싫다면서 다른 채널로 돌려달란다. 주인장이 드라마로 채널을 돌렸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고성을 지르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야비하게 다투는 모습이 나온다. 다른 채널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없다. 정치적 논쟁은 짜증스럽고 일상생활에서의 다툼은 볼 만하다는 것인가? 내 눈엔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것을...

 

학부모상담을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이 나라의 상황이 지금 실컷 놀다가는 어른이 되어 불행해질 것 같아 불안하단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방과후수업 듣는다고 똑같은 방과후수업 듣겠다면 보내줘야 행복한게 아니냐고 말한다.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싶어 놀이터에 나가면 함께 놀 친구가 없다고 말한단다. 친구들이 학원갔기 때문이란다. 또한 옆집 아이가 학원다니면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걸 들으면 내 아이도 학원보내서 공부를 잘 하게 하고 싶단다. 그래서 학원가서라도 친구랑 놀라고 학원보낸단다.

수업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내달리는 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하여 일기를 안 써오는 날이 많다. 그래서 남아서 쓰고 가라고 했더니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한단다. 상담하자고 그 아이의 엄마를 불렀다.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을 안고 온 엄마, 다섯 살 아이가 들어오자마자 보챈다. 집에 가자고 자꾸만 보챈다집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많은가보다.

학원을 세 군데 보낸다는 그 아이의 엄마에게 혹시 아이가 학원 스트레스 받지 않겠나 물어봤더니 아이가 힘들긴 하지만 괜찮다했단다. 왜 괜찮다고 대답할지 생각해봤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학원 안 간다 했을 때 보여지는 엄마의 실망하는 얼굴빛때문일거라고...

다음날 아이에게 물었다.

학원 세 군데나 다니는 거 안 힘들어?”

힘들어요. 집에 돌아오면 저녁시간이라 밖에서 친구들과 놀 수도 없고...”

그럼 엄마께 학원 안가겠다고 하면 되잖아?”

제 친구 OO이는 저보다 더 많은 학원을 다니는 걸요. 그 친구보단 제가 나아요.”

이럴 땐 대견하다 칭찬해야하나?

 

방과후학교 조례제정 이후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가야하는데 서로 실타래를 풀겠다고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이러다 언젠가 끊어지지.

조례제정이 공포되고 언론에 공론화되자 또다른 지역들이 방과후학교 조례를 만들려고 시도를 하고 있나보다. 방과후학교 법적근거를 지역에서나마 마련해놓자고 하는 발상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지역에서의 이런 움직임이 안타까웠을까? 더불어민주당 김한정의원을 중심으로 방과후학교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자고 발의했다는 소식이 언론으로 흘러나온다.

?

방과후학교의 공교육화를 시도하고 싶은 것인가?

중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로 학생들의 학습노동시간은 더 길어졌다. 학교에서의 학습시간에 더해 학원에서의 학습시간까지 우리나라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전세계에서 가장 길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공부의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어른들임에도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있기만을 바라는 태도.

이 모든 것들이 대학입시제도에 귀결되는 악순환적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야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고 남들이 알아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믿음 때문에 유모차에서 방실방실 웃던 아이의 미소가 점점 엷어지는 것이다. 아빠와 정감있게 대화하던 아이의 시끄러운 수다는 점점 침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미소와 수다가 사라진 가족간의 시간들이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도입된 방과후학교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특히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의 실정을 단순한 국정감사자료로 파악하지 말고 발로 뛰어다니며 눈으로 확인했다면, 방과후학교의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률개정논의를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결자해지차원에서 방과후학교의 문제를 평생교육의 일환이나 복지정책의 방식으로 풀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자꾸만 정치적 논리로만 방과후학교를 바라본다. 누구나 만족하는 성공적인 정책으로 자평하면서 공교육제도 안으로 정착시키려고 자꾸만 학교 안에 밀어넣는다.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의 교육이 공적인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럼 학생과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모든 방과후학교 교육을 학교는 담당해야한다는 것인가?

 

방과후학교 운영의 취지와 체제가 다르니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를 면밀히 살펴봐야한다.  초등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는 돌봄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

맞벌이 가정이면 맞벌이라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된다. 그런데 맞벌이 가정을 위해 마련된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을 쉬게 해주고 안전하게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에 대해 불만이 쏟아진다. 뭔가를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돌봄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학부모들, 늘 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만족스럽다는 학부모들, 그래도 모자라 아이들을 학원으로 또 보내는 학부모들.

홑벌이 가정은 나름대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게 어렵다하여 방과후학교를 통해서라도 학교에 맡기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집에 늦게 올 수 있도록 매일 다양한 방과후학교 수업시간표를 작성한다. 초등학교 1,2학년 수업시간이 다른 학년보다 일찍 끝나는데 1,2학년 아이들의 돌봄기능을 포함한 사교육기능까지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수업끝나기 무섭게 방과후수업교실로 아이들이 이동하기를 바란다. 그래도 아이들의 귀가시간이 빠를 것 같으면 학원 수업으로 학습시간표를 또 채운다.

 

과연 학교라는 곳에서 공적 책임을 다하여 돌봄을 해준다한들 학부모들이 만족할까?

방과후학교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교실에서 놀게 해주면 그건 돌봄의 기능을 못한다는 말인가?

방과후학교가 아닌 방과후활동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동아리활동을 하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은 학교의 돌봄 기능이 아니라는 것인가?

 

난 차라리 방과후학교가 아닌 방과후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토대를 마련해줬으면 한다. 진심으로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과 즐길 거리들을 공적으로 제공받는 것이라면, 또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교육과정 이외의 활동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예산.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은 없고 형식만 갖추는 법률마련이 현실적인 실태파악없이 탁상으로 공론화되는 한 교육의 백년지대계는 요원한 일이다.

 

왜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마을에서 웃고 뛰놀며 행복하면 안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