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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미국입성을 위해 긴박했던 연말의 악몽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국내여행을 다닐때도 아기자기한 섬에 들어가길 좋아했다. 문명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곳을 찾아서 특히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서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우리나라의 모든곳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가볼만한 곳은 어느 정도 다녀본 것 같아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가능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장시간의 비행을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멀리 떨어져있는 문화유산을 찾아 여행계획을 세웠다.

그 여행계획에 미국은 제외시켰다. 미국의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들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유색인종에 대한 선입견이었고 합리적이라고는 하나 테러위험에 대한 예방때문에 입국심사가 까다롭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비자받기 어려운 점과 지문확인등의 절차도 마음에 안들고...

지난11월 느닷없이 딸아이가 미국에서 진행되는 수학학회에 가게 되었는데 함께 갈 동년배가 없다고 망설이기에 보호자격으로 동행해준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급하게 항공권을 구입하려는데 늦게 찾아서 그런지 아님, 관광지가 아닌 곳이라 그런지, 그저 미국이라 그런지 저렴한 항공권이 없다. 경험상 목적지 외의 다른 곳을 경유하거나 타국적항공기를 이용하는게 저렴한데 11월말에 찾아본 항공권은 모두 비쌌다. 결국 대한항공직항 항공권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유럽갈 때 세사람 항공권 가격이 미국가는 한사람 항공권가격과 비슷했다. 딸아이는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보내주는 것이라 항공비는 나온다하니 내 항공비용만 지불하면 되지만 참 비싸다.  어쩔 수 없으니 어쩌랴.

그렇게 미국으로의 항공권을 구입하고 가끔 인터넷을 뒤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준비를 했다.

딸과 함께 묶어야 할 호텔을 구하는데 학회가 열리는 미국 애틀란타가 미국 내 위험한 도시순위 중 2~3위를 차지한다고 하니 학회가 열리는 장소에 인접한 곳으로 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다운타운에서 호텔을 정했다. 학회가 열리는 기간이 6일이라 하여 처음에는 6일만 머물려고 했는데 비싼 항공권내고 겨우 6일만 머무르면 아깝지 않냐는 반쪽의 권유에 따라 4일을 연장하여 열흘간의 일정을 정했다.

사실 오래 있는다고 볼 게 많은 것도 아니고(물론 내 입장에서)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 돌아다니며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새로운 학교로 옮기기로 결정했으니 방학 중 해야할 일이 많은 상황도 여행기간을 길게 잡지 못한 이유중 하나였다.

머물 기간을 정했으니 여행기간 중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여행계획에 맞게 예약이 필요한 경우의 예약을 인터넷을 통해서 미리 해뒀다. 그리고 나서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유럽여행 중 와이파이접속이 어려워서 정보를 얻지 못했던 경험때문에 해외유심을 구입할 까 알아보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하나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는 호텔조차도 원활하지 않은 인터넷 환경이라서 여러 가지 곤란을 겪었었다.

해외 여행시 해외유심이라는 것을 구입하면 내가 가진 핸드폰에 유심칩을 바꿔끼기만 해도 저렴한 가격으로 데이터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런데 이것저것 찾다보니 나처럼 단기간 여행자에게는 별로 도움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해외유심을 사용했을 때 내 전화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자기기를 사용함에 있어 미국은 110V전압이라 우리의 전압과 다른 환경이라 변압기가 필요한 가 봤더니 어댑터만 구입하면 요즘 나오는 전자기기는 100V~240V 변환이 쉽단다. 어댑터 한 개에 천원씩 두 개를 다이소에서 구입했다. 사실 다이소 거래는 안하려고 했는데...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의 식비를 줄이려고 간이키친이 있는 호텔을 정하여 컵라면과 햇반을 챙겼고 애틀란타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 편도 항공권을 저렴한(?) 것으로 예매했다. 미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보니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짧은 시간내 이동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일정중 딸이 좋아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려고 뮤지컬바우처도 구입했고 모든 여행준비는 끝났다고 믿었다.

그리고 바빴다. 학교일도, 전교조일도 정신없이 많은 일정들이 있었다.

12월 29일, 갑자기 동료가 물었다.

"미국비자는 받으셨죠?"

"단기간여행이라 비자는 필요없나봐"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는 찜찜했다. 딸에게 물었다. 비자필요한 거였냐고... 딸이 ESTA발급받으면 된다했다.

'ESTA는 뭐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전자여행허가서로 비자면제프로그램이라고 한다. 90일이내의 여행일 경우 신청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당연히 ESTA만 신청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뿔사, 내 여권은 십년전 만든 일반여권이라 안된다. 전자여권이어야 한단다'

머릿 속이 하얘졌다.

'전자여권은 또 뭐래?'

여권만료기간이 일년남았다는 사실만 안심했는데 전자여권은 또 뭐란 말인가!

검색을 해보니 2008년부터 우리나라 여권이 전자여권으로 바뀌었고 여권안에 칩이 장착되어있어서 미국입국 시 비자대신 ESTA라는 전자여행허가서로 대체할 수 있게되었단다. 그런데 내 여권은 2007년에 십년짜리로 만들어진 것이고 유럽여행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무튼 전자여권은 겉표지부터 일반여권과 다른 표시가 있고 여권번호도 M으로 시작하는것이다.


12월 30일 금요일. 대부분의 공식적인 업무들이 일찌감치 종무식을 통해 마감되는 날이다.  게다가 1월 2일은 월요일, 그것도 아침 일찍 출국할 항공권을 모두 발권한 상태에서 전자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는데 공식적인 업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 어찌해야할지 난감했다.

12월 30일 아침일찍 급히 외교부에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전에는 아는 사람 통해서 하룻만에 여권을 재발급받을 수 있었지만 김영란 법으로 인해 하룻만에 여권발급받는 과정도 부정청탁에 해당하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겠다 한다. 

'아니, 내가 뇌물주고 청탁하는 것도 아니고 긴급한 사안이 발생하여 사정을 해보는 것인데 그조차도 부정청탁?'

급히 시청으로 달려가 여권재발급 신청을 해보지만 3일이후에 나온단다. 여권재발급 신청을 하는데 나의 지문이 안 읽힌다. 기기를 바꿔봐도 안 읽힌다.(사실 어려서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았던 탓에 내 지문이 잘 안 읽힌다. 그래서 지문이 필요한 일본이나 미국으로의 여행을 꺼리기도 하는 것이다) 담당직원이 이것저것 개인신상을 묻는데 당황한 나머지 버벅거렸다. 우여곡절끝에 재발급 신청을 마쳤다. 

아, 이런! 미리 챙기지 못한 불찰을 어쩌랴.

일단 나의 항공권만 취소하고 딸을 혼자 들여보내야했다. 예약한 호텔 문제도 있고 출국임박해서 항공권을 구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학회 참석할 딸을 먼저 들여보내기로 결정했다.

나의 여권은 아무리 빨라도 1월3일 오후에 나온다하니 4일에 출국하는 대한항공직항은 탈 수 없을듯 하였다.

인터넷만 뚫어지라 쳐다보며 항공권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일단은 구여권으로 항공권을 구입하고 출국직전 여권정보를 수정하면 되니까...

가능한 딸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빠른 항공권을 구해야했고 돌아올 때 함께 귀국해야하니 대한항공으로 제한되어 검색을 하다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리고 다른 항공사 일정은 경유가 많아 비행시간과 대기시간등이 20시간넘게 걸리기도 했다.

겨우4일 오후에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연결되는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구입조건이 농협카드결제여야한다. 많은 항공사들이 삼성카드나 농협카드결제를 조건으로 제시해두고 있었다. 왜지?

난 농협카드 없는데 반쪽의 카드를 쓰려고하니 이용한도초과란다. 연말이라 통화는 안되고 12월 30일 세시까지 결제해야만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머릿속은 하얗게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항공사 전화하니까 전화는 안받고 무조건 세시까지 해결하라는 문자만 와있다. 항공권구입대행사에 전화문의하려해도 통화가 안된다.

그렇게 동동거리면서 긴박하게 항공권구입을 하게 되었다.

여권이 빨리 나온다면 곧바로 ESTA신청을 하고 공항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아, 머리아프다.

딸의 여행가방을 챙기면서 또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그렇게 딸을 미국으로 들여보내놓고 호텔예약사이트에 전화했다. 내 이름으로 예약했는데 내가 들어갈 수 없기때문에 체크인 명의를 변경해야했다. 다행히 미국시각이 우리나라 시각보다 하루 느리니 딸이 들어가기 전에 변경할 수는 있었다.

혼자 미국땅에 도착해서 호텔까지 잘 찾아가겠지만 엄마로서의 불안감때문에 밤을 새워야했다. 딸의 무사입성 연락이 올 때까지...

우리 나라 시각으로 1월 3일 오전 2시.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서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