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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중서부유럽여행 11일째-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예술적 감각이 흠뻑 묻어나는 다시 머물고 싶은 피렌체의 호스텔을 뒤로 하고

아침 9시 10분에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을 출발하여 한시간 반만에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영원의 도시', '세계의 수도'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로마는

테베레 강이 흐르는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다로부터의 거리가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고 역사적, 예술적, 종교적 가치가 높은 도시이다.

우선 민박집 찾기.

이 곳의 민박집 역시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을 방에 짐을 풀어놓고 옛 로마의 영광을 찾아서...

카를로 마데르노.

걷다보니 네거리 모퉁이마다 특이한 조각상이 있기에 다가가보니 콰트로 폰타네 분수란다.

그 중 하나는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의 일부이다.  

퀴리날레 궁전.

고대 퀴리노 신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있고

아래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목욕탕에서 가져왔다는 카스토르와 폴룩스 동상이 있다.

이 곳은 1573년 교황 그레고리 13세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으며 교황들에 의해 사용되다가

1871년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의 도읍이 되면서 이탈리아 국왕들의 공식 거주지가 되었기도 했다.

1946년 입헌군주제가 폐지되고 난 후 퀴리날레 궁은 공화국 대통령을 위한 집무실이 되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 광장을 찾아가다가 만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밀라노 명품거리에서도 들었던 이름).

건축당시에는 새하얀 대리석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여 시민들이 가장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있네.

'웨딩케이크'라고 비하해서 부르기도 했다하니 엄청 싫어했나보다.

1885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이 곳에서 연설을 했단다.

현재는 이탈리아 통일박물관과 무명용사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는군.

가운데는 에마뉴엘레 2세의 청동기마상이고 양쪽 지붕 끝에는 네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 청동상이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 가장 높은 언덕으로 고대 로마의 중심부였으며 유피테르와 유노 신전이 포로를 향해 세워져있다.

정치적 중심이었던 이 언덕은 미켈란젤로의 설계에 의해 16세기에 현재의 새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에 의해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 된 캄피돌리오 광장 정면은

현재 로마 시청으로 사용하는 세나토리오 궁이고 콘세르바토리궁과 누오보궁이 마주보고 서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걸어내려오다 낯익은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캄피돌리오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의 주요 공공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공적 모임 등의 주요 행사장으로 쓰였던 곳이었던 만큼

오밀조밀하게 건축물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851년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 

린트 식 기둥 세 개가 남겨진 곳은 베스파지아노 신전이 있던 자리.

여덟개의 이오니아식 기둥과 대들보가 남아있는 자리는 기원전 497년에 세워졌다는 사투르노 신전이 있던 자리란다.

사투르노 신전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으며

로마인들이 가장 공경하는 농업의 신 사투르노에게 바쳤다고 한다.

세티미오 세베로 개선문과 일부만 남은 원로원 건물도 볼 수 있었다.

콜롯세움에 가장 가까이 세워진 티투스 개선문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전투 승전기념으로

81년에 세워진 개선문 중 가장 오래된 개선문이라고 한다. 

이 개선문에 유대인을 학대했던 베스파시아노 황제와 티투스 황제의 개선장면이 부조화되어있어서 

유대인은 이 문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티투스 개선문을 지나 만나게 된 콜롯세움.

오래 전 영화를 통해 많이 본 탓인지 익숙한 건물이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서기 72년에 베스파시아노 황제에 의해 착공되었다고 하며 80년 티토황제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1층에서 3층까지 80개의 아치가 있고 4층은 벽면으로 막혀있다.

또한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원형경기장이었으나

중세에는 자재 채석장으로 전락해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자리에는 쇠고리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유산에 대한 푸대접이 심했던 탓일까?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워준 것이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하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기독교 공인이 생각나는데 ...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고대 로마 양식 4대 성전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데 로마 귀족 조반니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었다는군.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

한국에서 단체로 학생들이 들어왔다. 민박집에도 단체관광객이 오다니...

트레비 분수 광장에 유명한 아이스크림가게가 있다하여 야경도 보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맛볼 겸 슬슬 걸어나갔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서의 마지막 바로크 양식으로 1762년 교황의 공모로 만들어졌으며

폴리궁전의 벽면을 이용해 니콜로 살비가 대자연을 주제로 형상화했고 30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성했단다.

바로크양식의 넵튠과 트리톤 조각상이 가장 눈에 띈다.

뒤로 돌아 동전을 던져넣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시 로마로 돌아오기 위한 염원을 담았다네.

젤라떼리아는 못 찾고 대신 다른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걷다보니 어둑어둑해졌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길거리 예술가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콜롯세움 야경보러 가는 도중에 포로로마노 옆 도로에서 작품 하나를 보게 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보이면서도 독특해보이는 세개의 분수가 있는 나보나 광장이었다.

밤거리인데도 그림그리는 화가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1세기 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전차경기장 자리였다는데 1651년 베르니니가 설계했다고 전하며

양 쪽 끝에는 무어인의 분수와 넵튠의 분수가 있고 가운데는 거대한 강물의 분수라는 이름의 대작으로

다뉴브강, 갠지즈강, 나일강, 리오데 라플라타 강 등 4대륙을 상징하는 의인상이 조각되어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길거리 레스토랑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묻기를

"Chinese?"'" No""Japanese?""No""Aha. Korean?"

'뭐야, 세번째나 되어야 한국인이냐고 물어?'

첫번째로 물었어도 음식 사먹을까 말까하는데...

이탈리아에서 하루를 보내면 느낀 것은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맥도널드조차도 현금으로만 달라고 하니 이탈리아에서의 현금지출이 큰 편이었다.

옛 로마의 문화유산을 거리 곳곳에서 스치듯 만날 수 있는 그런 곳.

우리가 알고 있는 피자와 파스타이 본고장.

그러나 자장면이 정통 중국음식이 아니듯 우리가 먹는 피자와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보는 것과 정말 다르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