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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동유럽여행 마지막ㅡ건축적 상상력으로 비운의 왕이 된 루드비히 2세

새벽, 반쪽으로부터 차시동이 안켜진다는 문자가 왔다. 체감온도 영하 이십도라는 우리나라는 지금 온통 얼음왕국이란다. 이곳에서의 여행도 하루남았다.
퓌센역에서 성이 있는 슈반가우마을까지 왕복 버스요금은 1인당 4.5유로. 78번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들어간다. 이미 어제 걸어들어갔다온 길이다.
두 개의 성에 대해 가이드설명(한국어가이드없음)들으며 둘러보는데 1인당 23유로(호텔할인받으면 21유로. 그런데 호텔에서 1박당 2.2유로의 City tax를 냈으니 할인받은 것도 아닌셈). 성에 대한 설명듣는데 한 곳당 사십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5분 간격으로 입장을 하고 설명듣고 이동하는데 자세히 둘러볼 여유가 별로 없다. 상업성도 좋지만 시간여유를 좀 더 두었으면 좋겠다. 내부 사진촬영은 절대 금지. 하루 8000명으로 관람객을 제한한다고 들었다.

동유럽여행은 흔히 동화 속 여행이라고 한다. 중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유럽민족들의 옛 전설을 들을 수 있기도 하고 세계적 음악가들의 음악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곳.

퓌센에는 그 동화 속 아름다운 궁전을 찾아 많은 관광객이 온단다. 먼저 찾아간 곳은 매표소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걸어가면 십분 거리에 있는 호헨슈반가우 성. 이 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바그너라는 음악가를 만나 바그너의 오페라에 심취한 나머지 온통 바그너 음악이야기를 바탕으로 성을 설계하고 건축하느라 인생을 바쳤다고 말할 수 있는 루드비히 2세. 바이에른 왕국의 국왕이었으나 정작 왕으로서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상상 속의 성을 짓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했던 루드비히 2세.
어린 시절, 아버지 막시밀리언 왕이 요새가 있던 자리에 고딕양식으로 이 성을 지었으며 여름을 보내는 별장이었다고 한다. 침실천정의 환상적인 별그림을 보면서 우리아이들 키울 때 야광별 붙였던 기억이 났다. 한적한 마을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어린시절 루드비히에겐 편안한 안식처였나보다. 사십여분가량 성을 둘러보며 몇개의 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성 주위를 산책하다보니 알프스가 보이는 알프제호수가 펼쳐져있어 루드비히가 상상의 나래를 펴긴 좋았을 듯.

또한 루드비히 2세의 바그너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음악가 바그너의 탄호이저나 로웬그린 등이 후세에 알려지지않았을지도. . . 당시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는 바그너에게 있어서 루드비히와의 만남은 커다란 빛이었을 것이다.

호헨슈반가우성을 돌아나오니 언덕 위에 디즈니랜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표소에서호헨슈반가우성 반대쪽으로 30분 걸어 올라가면 된다. 가는 길에 말똥이 많다고 딸이 마차를 타자했으나 대기하고 있는 마차가 없어서 그냥 걸어 올라갔다. 성을 짓느라 자신의 재산과 가족의 재산, 어쩌면 국고마저도 탕진했을 지도 모를 만큼 노이슈반슈타인성은 호화스러움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큰 가방의 소지는 허락지않는 걸 보니 가방에 성내의 물건을 담아갈까 우려하는 것일까?
성의 설계과정에서 세차례 변경되었단다.루드비히가 세세하게 직접 감독할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성이지만 의도했던 성의 완공을 보지못한 채 미완의 성에서 단 6개월 거주하다가 정신병자로 취급받고 퇴위되어 의문의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단다.

지금까지 보았던 성들이 요새의 기능을 함께 갖춘 튼튼한 성이었는데 반해 이 성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백조를 연상하며 백조의 형상으로 지었으며 방 하나하나 바그너 음악이야기를 프레스코화로 그려넣고 각종 장식의 호화스러움이 말할 수 없이 대단했다.
물론 상상력을 현실화시키기위한 노력으로 다양한 장치들이 성의 곳곳에 숨겨져있기도 했으니 건축가 루드비히였다면 성공적인 삶이었을지도. . .
그러나 왕좌가 있던 방만해도 이천파운드 무게의 샹들리에, 프레스코화를 그린 벽, 모자이크타일의 바닥 등 규모나 장식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탓에 재정이 고갈되고 정신병자라는 비난을 듣게 되지않았을까? 그래도 슈반가우 마을 사람들은 왕을 사랑했단다.문득 푸른기와집 쓰레기통이 90만2천원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설마 몇백년 후 관광지가 될거란 생각에 들여놓은 고급휴지통은 아니겠지ㅎㅎ아무튼 루드비히2세도 그런 비난을 들을까 우려했었는지 사후에 이 성이 관광상품이 되는게 싫으니 자신이 죽거든 이 성을 폭파시키라고 했다는군.

 


역시 내부 사진촬영금지라 엽서 사진을 대신 올려본다.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방들. 그러나 루드비히 2세는 그 방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했다네.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던 곳, 바그너 오페라의 배경이 되었던 곳의 사진이다. 샹들리에가 왕관모양이다.

또한 결혼도 하지않고 성의 건축에만 빠져있던 루드비히 2세 이야기를 듣는 중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함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 당시 꽃미남꽃미녀였던 두 사람 모두 왕실의 답답함을 싫어했던 것과 비운의 죽음을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바텔스바흐가문이란다.
무튼 이 성 말고도 두 개의 성을 더 지었다는데 시간상 가볼 수는 없었지만 화려함은 다른 성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런데 중국인 관광객이 무척 많이 보인다. 동유럽에선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곳 퓌센은 중국인들에게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주나? 이상하게 많군
겨울이라 이 성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마리엔다리는 올라가볼 수 없었다. 출입을 막았기때문이다.

마리엔 다리에서 본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가을이란다. 엽서의 사진이다.

마차를 타보는 것(올라갈 땐 6유로, 내녀올 땐 3유로)으로 마지막 여행을 마무리하며 내려왔는데 신랑신부가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왕과 왕비가 된 기분이려나. . 생각해보니 어린시절, 서양의 동화를 우리 전래동화보다 더 많이 읽은듯하다. 그래서 동화 속 세상을 꿈꾼 적도 있었고 이렇게 꿈꾸듯 여행을 하게 된 것 같다.독일 바이에른지방의 전통음식이라는 schweins haxe(돼지 발목요리)를 먹으러 시내에 나갔는데 일요일이라 문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찾은 곳에서 맛본 학세는 돼지발목을 끓여서 구운 것이라는데 체코의 꼴레뇨와 비슷했다. 개인적으로 꼴레뇨보다는 맛있다. 11.5유로니까 우리돈으로 만오천원정도.

아쉽기도 한 15박 16일의 동유럽여정을 마치며 아들딸과 마무리 만찬을 즐겼다.

슈반가우마을의 두 성을 둘러보느라 걸어다닌 거리는 9.3km 


Auf wiederse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