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 생각하는 교육

마을살리기 교육과정

2년 전, 학교가 있는 마을에 환경을 위협하는 공사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시위를 하게 되었고 학교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교장이 도움요청을 거절했다.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마을에 공사장이 들어서면 학생들에게도 영향이 미칠텐데 그런 상황에서 중립이라니...

십년넘게 이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찜찜했던 것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십년 근무하면 떠날 지역인데 관심가져서 뭘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떠돌아야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던 예전엔 미처 심각하게 고민을 못했던 것이다. 학부모들이 주거지를 물을 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이 곳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세금은 다른 곳에 내는 현실에 대해서도 미안했고 아이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내 아이들을 키워줄 친정부모님께서 사시는 곳에서 거주할 수 밖에 없었고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야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친정부근에서 학교로 출퇴근해야했다. 내 어린 시절 친정아버지 직장따라 자주 옮겨다녀야했던 기억이 싫어서 내 아이들만큼은 한 곳에서 나고 자라길 바랬던 때문이다.

두 아이가 다 성장해서 떠나고 이 지역자체만으로 광역자치도시가 되면서 타지로 떠날 이유가 없어지면서 이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 것도 이전에 가졌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는 생각이었다. 마을 이장님과 인사도 나누고 동네 할머님들과 친분도 쌓고 아이들 집에 놀러갈 수도 있게 되었다. 아침마다 마을 이장님의 방송 소리를 들으며 마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어떤 일이 생기면 의견을 드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한 주민으로 동화되는데는 부족하다.

마을을 살리는 교육과정과 관련한 연수를 했다. 출장때문에 끝까지 듣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마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뭐냐고 물었을 때, 참 난감했다. 기억나는 게 없다. 내게는 마을은 없었고 집만 있었다. 항상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했고 맏이로서 집안일과 동생돌보는 일이 내 할 일이었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랬겠지만 집안살림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무튼 살기가 편치는 않았다. 그저 골목길에서 가끔 놀았던 기억이 있을 뿐이고 엄마가 가져오신 일감들. 각봉투에 풀붙이기, 곰인형 눈붙이기, 뜨개질하기 등 푼돈을 벌기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했던 슬픈 기억들만 있었다. 다른 동료들이 마을에 대한 기억들을 쏟아놓는데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20대와 4,50대의 마을에 대한 기억이 다르고 도시출신과 시골출신의 기억이 다른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쨋든 동시대를 살았던 동료들에 비해서도 내 기억 속엔 마을에 대한 아련한 추억도, 친구들과의 정겨운 시간들에 대한 추억도 모두 없는 편이다. 고향이라고 떠올리고 싶은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전학가서 일년 반 정도 살았던 홍성의 어느 마을이 전부.

저학년을 가르쳐보지 않아서 마을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해야하는지 몰랐다. 물론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지역의 범위가 점점 확대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 다루어주어야하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3학년을 두 해 가르치며 지역화교과서로 세종시를 다루어야하기에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마을에 살면서도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학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마을 이장조차도 농사를 짓지 않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란다. 그런데 마을교육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연수를 시작하면서 강사가 던진 화두는 '마을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런 마을에 대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데 요즘 아이들도 그런 기억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 그동안은 심각성을 잘 몰랐다. 마을이라는 낱말이 주는 정겨움, 그리움, 아련함 등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불행하게 느껴졌다.

혁신학교를 시작하면서 마을을 살리기위한 학교운동이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면단위 혁신학교의 방향이 마을과 함께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작 마을살리기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보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는 학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들을 페친을 통해 자주 듣고 있는데 쉽지않은 과정들이기에 마음만 있을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마침 곁에 있는 동료가 놀이를 통한 감수성을 기르고 공동체의식을 키워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아이들과 마을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교육과정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항상 놀라운 사실은 현장의 교사들이 교육과정 전문가라는 것이다. 바로 곁에 있는 동료의 실천적 연구를 보고 '역시 현장 전문가구나'하는 감탄을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마을 살리기 교육과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실제로 연구하는 노력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이 학교에서 마을 살리기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동료들과 함께 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함께 마음을 맞추어갈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사실. 더디가더라도 천천히 함께 마음을 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기다림이 아직은 더 필요하다는 것. 그러기 위해 내가 뭘 해야할 지 빨리 자리잡아야한다는 것. 앞으로의 과제들이다.

'함께 생각하는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다면 한다  (2) 2015.11.02
미래세대에게 부끄럽다  (2) 2015.10.18
고교평준화에 대한 상향, 하향논란  (4) 2015.09.29
목공으로 삶을 가꾸기  (2) 2015.09.17
ADHD는 도대체 왜?  (4) 201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