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 생각하는 교육

알파고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1983년 당시 대학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난 후 담임선생님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은 EDPS(Electronic Data Processing System)였다. 전자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는 뜻인데 당시로서는 생소한 용어였다. 수학전공이던 담임선생님께선 그 책에 호기심을 보이는 내게 읽어보라고 권해주셨고 그 책으로 인해 이후 난 컴퓨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학창시절을 아날로그로 보내온 내게 있어서 컴퓨터라는 것은 신세계였다. 당시 우리나라에 애플컴퓨터가 소개되었고 88컴퓨터라고 불리웠던 컴퓨터 한 대 가격이 우리 집에선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기에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과목으로 컴퓨터과목을 신청했고 BASIC언어와 COBOL, FORTRAN등의 컴퓨터 언어를 배웠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물론 깊이는 없었다. 단지 교양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디지털의 세계를 경험했고 중학교에서 기간제교사를 하면서도 처음 선보이게 된 컴퓨터로 채점을 하는 OMR기기를 다룰 줄도 알게 되었다. 1997년에 한글워드프로세서 자격증 1급을 취득했고 아들에게 엑셀을 가르쳐주고 함께 컴퓨터활용능력 3급 시험에 도전해서 3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런데 그 당시 취득한 자격증이 지금도 제 기능을 발휘할까? 주말마다 서울까지 다니면서 동영상편집프로그램 프리미어의 현란한 기능들을 익히고는 또 한 번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배운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조카 돌잔치에 탄생이후 일 년을 영상으로 담아 CD를 선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굳이 어려운 프리미어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는 동영상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전화선을 통해서 인터넷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이버세상의 경험, 이제는 선이 없이도 인터넷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컴퓨터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인터넷 접속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소식을 즉시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어쨌든 컴퓨터를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컴퓨터학과를 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난 컴퓨터세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일반인들보다 특히 내또래의 아줌마들에 비해서 특출 난 만큼 잘했다.

교단에 서기 전, 집집마다 방문해서 아주 간단한 오류에 대해 컴퓨터를 수리해줄 정도의 기술도 익혀 돈벌이를 하기도 했으니 말 다했지

그 덕에 지금도 컴퓨터를 사면 기본적인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간단한 오류를 점검하는 등의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 그 탓에 나의 반쪽과 아들딸은 컴퓨터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어차피 내가 수리해줄 거라 믿기 때문이란다. 이건 마이너스 효과인 듯.

무튼 난 지극히 디지털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그 디지털 세상에 대해 회의적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나 너무 어린 나이에 디지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나의 경험에서 보아도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늦은 나이에 배웠다고 해서 디지털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더구나 지금 배워놓는다고 해서 미래에도 똑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는 것이다.

2000년 교단에 서기 시작하면서 학급용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해보았고 싸이월드를 활용하여 아이들과 소통공간을 만들기도 했으며 다음포털을 이용해 카페로 학급 홈페이지를 대신하기도 했고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공간에 글을 쓰고 있고 트위터, 페이스북, 카톡 등등 새로운 SNS소통방식에 빠져들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기능들을 경험하면서 기기들을 바꾸는데도 발빠르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학교에서 함께 근무할 동료들과 교구준비를 위해 논의하다 가슴 답답한 경험을 했다.

우리말 국어사전을 사자고 건의했더니 스마트패드로 낱말 뜻을 찾으면 되지 않냐고 한다. 피아노를 사자고 했더니 피아노 칠 일이 없으니 디지털 피아노를 사잔다. 심지어는 교육용 사이트에서 음악을 들려주면 된다고 한다. 그럼 실험 안해도 되겠네. 동영상으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고 체육도 동영상으로 시범보여주고 따라해보라 하면 되고 그림도 컴퓨터로 그리면 되는 거 아닌가! 공책정리는 워드프로세서를 활용해서 파일로 만들면 되니까 글씨 쓸 필요가 없고 말이다. 슬프다.

어려서 가슴졸이며 즐겨보았던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과 함께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여행하던 철이가 그토록 원했던 삶이 어떤 삶인가 생각해보았다. 결국 인간다움이 이기게 되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영원한 삶이라는 게 어찌보면 자연의 섭리 속에 살고 죽는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멀지않은 미래에 인간들이 영원한 삶을 위해 인간다움을 버리고 디지털의 삶을 추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또 슬프다.

사각사각 연필깎는 소리가 듣고 싶고 슥슥삭삭 글씨쓰는 소리가 듣고 싶고 띵똥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그리운 난, 알파고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일까?

                                                             (이미지 출처: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