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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브로드웨이뮤지컬 'THE PHANTOM OF THE OPERA'

일출무렵, 호텔 27층에 마련된 라운지에 올라가봤다. 천편일률적인 건축물의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빽빽한 고층빌딩숲과 일방통행으로 혼잡하게 서있는 출근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별 매력없는 곳이다. 뉴욕이란 도시는...

밤새 엠뷸런스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무슨 사건사고가 그리 많은지...

호텔라운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커피, 그리고 약간의 에너지바가 놓여 있었다. 비지니스를 위해 뉴욕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호텔에서 정수기 물을 담아가도록 정수기 옆에 물병을 비치해놓았고 이렇게 라운지에는 먹거리와 컴퓨터, 프린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객실에도 캡슐 커피메이커와 캡슐커피를 두어 커피 마시기 좋지만 이 라운지에 오니 뜨거운 커피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과일과 에너지바를 챙겨 내려왔다. 객실에서 자고 있는 딸을 위해...

뉴욕지도를 펴놓고 하루의 일정을 그려보았다.

우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표를 살 수 있는 넓은 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애플사의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애플스토어인가보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포함한 다양한 제품들이 놓여져 있었고 구경하는 사람들과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상담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애플스토어의 입점조건이 까다롭다고 알려져있던데 그랜드센트럴 역은 그런 입점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나도 보안이 잘된다는 아이폰을 사고 싶었는데 우리나라에선 백만원을 훌쩍 넘으니 넘 비싸서 여기서 사면 싸겠다 싶었지만 어차피 관세가 붙을 거라 사갈 수도 없는 그림의 떡이다.

지금의 역건물은 1913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2백년 넘은 역사를 보여주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선을 연결하고 있다더니 드나드는 열차와 지하철이 분주하다.

 

또한 이 역의 중앙홀 천정에는 별자리를 그려놓았다고 한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여러 별자리들이 보였다. 저 별자리들을 왜 그려놓았을까? 

중앙홀을 벗어나면 전날 들렀던 market 외에도 곳곳에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고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재미있는 물건들도 보였다.

맨해튼 도시를 바둑판처럼 구획해놓아 도로마다 'AVE.'와 'ST.'로 명칭을 붙여놓았는데 아마도 이명박정권에서 우리 고유의 마을이름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명칭을 도로명으로 억지로 바꾼 것이 서양의 흉내를 내고자 함이었나 생각한다. 난 도로명 주소로 무리하게 바꾼 것때문에 고유한 마을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며 이명박을 탓하는데 딸은 도로명 주소때문에 길찾기 편해졌다고 말한다. 세대차인가!

내가 머물렀던 뉴욕 맨해튼에서 보면 남북방향으로 놓여진 대로는 'AVE'로, 그'AVE'를 가로지르는 동서방향의 도로를 'ST.'로 명명하는 듯하다.

그랜드 센트럴 역과 내가 머문 숙소 사이의 Park AVE. 를 따라 센트럴파크까지 40분가량을 걸었다.  유럽과 달리 걷는 내내 건물 공사로 인해 비좁은 인도를 만나고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 처럼 사람보다 차량을 우선 생각하는 운전자들을 보았으며 며칠 전 내린 눈들이 미처 다 녹지 못한 채 쌓여있는 질퍽함을 만나야했다. 일방통행로가 많다보니 밀린 차들이 꼬리물기하는 장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여긴 꼬리물기 단속이 없나보다.

센트럴파크 서편의 콜럼버스 서클까지 가는동안 명품거리를 보았다. 새해맞이 쎄일을 하고 있어서 딸이 사고 싶다는 물건들이 있었지만 쎄일가격조차 비싸도 넘 비싸서 패스. 굳이 명품에 돈을 쓸 필요는 못 느끼고 살았으니...

이 곳은 소비하기엔 좋은 도시로 보인다. 내가 알고 있던 명품브랜드말고도 딸이 알고 있는 브랜드(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들도 여러 군데 있었다.

 센트럴 파크를 만났다. 누군가 그랬다. 센트럴 파크를 걸어서 가로질러 갈 생각하지 말라고...물론 이 추운 날씨에 공원을 거닐고 싶지는 않지만

링컨센터까지 걸어서 그냥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콜럼버스 서클 주변에 커다란 백화점같은 건물을 만나 들어가봤다. 딸이 들르고 싶은 화장품 매장 'SEPHORA'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화장품매장에 들러 사고 싶은 게 있는지 살펴보고는 찾는 것이 없다고 하기에 지하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유리창밖으로 콜럼버스 서클과 센트럴 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서클이란 것이 우리의 로터리같은 개념인 듯 보인다. 서클 가운데 우뚝 솟은 기둥 위에 콜럼버스 동상이 있다고 한다.

백화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떡하니 자리잡은 풍성한 아줌마(?)동상을 만나 사진 한 컷.

이걸 왜 여기에 세워두었을까? 그럼 아저씨는 어디에?

지하로 내려가니 우리나라 백화점의 마켓처럼 꾸며져 있어서 이것저것 구경만 하다가 과일코너에서 4달러짜리 라즈베리(산딸기?)를 하나 사서 계산하려는데 줄이 엄청 길다. 겨우 이거 하나 사는데 줄이 너무 길기도 하네. 그런데 계산대로 부르는 시스템이 흥미로웠다. 손님들은 9개의 줄에 서있고 세개의 줄마다 모니터가 하나 있는데 모니터에는 세개의 줄이 삼색으로 구분되어있고 각각의 색깔에 계산대번호가 나타나면 그 계산대에 가서 계산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다.

푸드코트에 앉아서 라즈베리를 먹으며 딸이 행복해한다. 그런데 왜 우린 산딸기를 파는 마트가 없냐며 투덜투덜...

와이파이가 잡힌다. TIME WARNER CENTER의 와이파이가 잡히기에 검색할 것들을 재빨리 검색했다. 역시 미국은 와이파이 서비스가 좋은 환경이라 맘에 든다.

Trump라는 이름이 들어간 건물이 옆에 보였다. 실제 트럼프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뉴욕의 갑부라고 듣기는 했는데

콜럼버스 서클에서 브로드웨이를 따라 타임스퀘어를 향해 걸었다. 너무 춥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보고싶다하여 뉴욕에 오기전에 오늘 저녁 8시에 공연하는 'The Phantom of The Opera'를 예매해두었었다. 그래서 8시까지 이곳저곳 구경하면 시간을 보내려했는데 날씨는 넘 춥고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 대도시증후군인 듯. 사실 며칠 전부터 뉴욕날씨는 한파란다. 유럽에서는 한파로 사망한 사람들이 몇 십 명 있다는 뉴스를 듣기도 했지만...

타임스퀘어 도착하기전에 시계를 확인하니 두시 반. 도저히 여덟시까지는 돌아다니기 어렵겠다.

피자 두조각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오기로 했다.

길건너 편에 'PIZZA CAFE'가 보이기에 들어가 딸이 먹고 싶은 페퍼로니 피자 한 조각과 내가 먹고 싶은 샐러드 피자 한 조각을 주문하니 화덕에 넣고 구워준다. 두 조각 가격은 12달러. 오늘 저녁식사다.

화덕에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계산대의 아저씨가 춥냐고 묻기에 넘 춥다고, 한국보다 춥다고 그랬더니 손을 내밀며 악수하잔다. 손이 무척 차가워 소스라치게 놀랐다. 뭘 했기에 손이 차가운 지 묻지는 않았다.

춥고 머리 아파 아무 생각이 없는데 딸은 저만치 멀리 있고 계산대 아저씨가 뭐라뭐라 하는데 귀에 안들어온다.

"Pardon?"

"~~like here ~~"

'뭐지? 뭐라 하는 거야?'

"like here, like New York?"

매장의 직원들이 다 웃는다. 가만히 생각하니 주문한 피자를 여기서 먹을건지 가져갈 건지 물었던 것이었다.

에궁 부끄러워라. 괜히 한국인이라고 했다. 일본사람이냐고 물을 때 그렇다 할 걸 ㅜㅜㅜ

피자 두 조각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과 과일을 가져다 저녁거리를 때운다.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공연시각 한시간 전에 뮤지컬 예약 바우처와 공연티켓을 바꿔야해서 Majestic 공연장으로 갔다. 타임스퀘어 부근 브로드웨이에는 뮤지컬공연장이 많다. 그래서 뮤지컬 티켓을 구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하면 비싸더라도 원하는 좌석을 고를 수 있어 좋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공연관람계획이 있다면 타임스퀘어광장의 tkts에서 공연 두시간 전부터 기다리다보면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단다. 운이 좋으면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들었다. 행운이 있다면 추첨에 의해 티켓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운을 바라고 시간을 보내기엔 좀... 

무튼 이미 예약한 티켓을 찾으려고 공연장에 도착한 시각이 6시 좀 넘은 시각. 사람이 별로 없었다.

'주말이 아닌 월요일 8시라는 시각이 사람이 많을 시각은 아니지' 

티켓으로 교환한 후 우리의 좌석위치를 확인하고 타임스퀘어로 갔다. 화려한 네온간판들이 눈부시다. 물론 상점의 이름을 알리는 간판들은 작다. 간판이 별도로 있다기보다는 입구 윗쪽에 글씨로 적혀있을 뿐이라 상점을 찾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봐야한다. 화려한 네온간판들은 광고용일 뿐 상점간판은 아니었다.

디즈니 매장에 들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각종 캐릭터들이 있었다. 애틀란타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영화'주토피아'의 캐릭터상품들도 있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나무늘보를 보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오더니 자신의 얼굴과 닮았다며 깔깔거린다.

일본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딸은 디즈니상품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2층으로 올라갔다가 내 블로그에 그려진 콩세알을 떠올리게 하는 상품을 만났다. 내 블로그의 콩세알 그림을 딸이 디자인한 것인데 디즈니 매장에 콩세알이라니...

공연시간이 이십분 남았기에 공연장으로 왔더니 입구에 관객이 그득하다. 어느 새 관객들이 몰려든 것일까?

우리 좌석으로 가기 위해 빼곡히 서있는 인파(2층으로 가는 관객들)를 뚫고 통로까지 가야했다.

커튼으로 가려진 무대소품들. 잠시 후 불이 꺼지고 두 시간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놀라운 무대변신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과 천정의 현란한 활용, 무대바닥의 신비한 변신. 마술하듯 숨겨진 공간들.

맨 앞자리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는 보이는데 오케스트라단원은 어디있을까? 무대 아래에 있는 듯 싶은데 잘 안보인다. 지휘자의 손짓만 보일 뿐.

무대장식인가 싶었는데 주인공의 이동수단이 되기도 하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무대위에서 공연장 천정을 향해 올라갔다가 다시 무대로 떨어지기도 하는 등 화려한 무대구성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이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있는 건가?

물론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와 춤솜씨는 말할 것도 없지만...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니 딸 덕분이다ㅎㅎ

공연이 끝나고 감동의 박수를 보낸 후 밖으로 나오니 화려한 간판불빛들이 가득하다.

길거리에 쓰레기봉투들이 즐비하다. 낼 새벽에 수거해가는 쓰레기들인가보다. 그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노숙자, 길바닥에 담요 한 장 덮고 누운 노숙자를 바라보며 화려한 불빛과 대비되는 씁쓸함. 그리고 도로 곳곳의 드릴소리와 엠뷸런스 소리로 시끄러운 도시의 밤이 난 싫다. 850만이 넘는 인구수를 가진 도시 뉴욕의 밤거리를 투덜거렸더니 딸의 말이 서울도 그렇단다. 그런 서울의 인구수는 오히려 뉴욕보다 많으니...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현지 시각으로 밤11시.

전화기를 두고 나갔다 왔더니 반쪽으로부터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머나먼 이국땅에 보내놓고 걱정스러웠을 터라 전화를 걸었는데 안받는다. 바쁜가보다. 한국은 오후 1시쯤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