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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벗삼아

텃밭가꾸기, 우습게 보지 마라

텃밭교육!

도심의 자투리공간에 시민들에게 분양해주는 텃밭이 만들어진다.

텃밭을 분양받고자 하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곳곳에 주말농장이라는 이름으로 텃밭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초록농장!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달려가고 싶어하는 곳!

작년 개축공사 이후로 초록농장에의 출입이 어려워 아이들은 안타까워했고

대신 작은 상자텃밭을 임시로 만들어서 2학기 무와 배추농사를 지었고 김장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올해초 위험한 공사가 대충 마무리되자 다시 초록농장을 정리하고 텃밭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담당자는 따로 있다.

텃밭에 관심을 가졌던 동료들은 떠났고 텃밭에 나가길 싫어하는 동료가 텃밭 담당자가 되었다.

난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도움을 줘도 초빙으로 들어온 부장을 포함하여 일부 교사들은 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저 교감이 하라는 대로 교감이 가르쳐주는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려고만 한다.

교감은 자신이 프로젝트 수업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교사들에게 프로젝트 수업을 권장하고 있고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꼭 갖추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학교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초록농장은 자연학습장이다.

땅 속에서 나오는 각종 애벌레와 지렁이, 쑥쑥 자라는 작물들, 까맣게 익은 뽕나무 열매,

농장 옆으로 흐르는 실개천에서 살고 있는 도롱뇽 등이 아이들의 친구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뛰어나가서 흙을 만져보고 많은 생물과 무생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삶에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해갈 것이라고 믿는다.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고 가끔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몸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 기회를 준다.

올 봄에 텃밭교육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무조건 작물을 심으려고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작물을 심는다고 그저 관찰하고 열매 따먹는 등 좋은 점만 있는게 아니라

풀도 매줘야하고 가끔 뱀이 나오기도 하고 위험한 일도 있다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교감이 모두 텃밭교육을 하라고 했나보다.

텃밭에 나가길 싫어하는 도시남자들마저도 텃밭교육을 하겠다고 나서고 이것저것 작물을 심었다.  

그리고는 교감이 만들어준 학습지를 들고다니면서 관찰기록을 열심히 한다. 그렇게 한 달 쯤 했나보다.

뱀이 돌아다니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교무실에서 메시지가 왔다.

그러더니 농장에 아이들이 못 나온다.

그저 우리 반 아이들만 농장에서 토끼들과 놀 뿐.

학교 주변에 숲이 있고 학교부지가 습한 곳이라 예전부터 뱀이 자주 나온다.

교실에 들어온 일도 있다.

아이들은 뱀이 나왔다고 하면 오히려 잡아보려고 난리법석이다.

뱀이 나온다면 뱀을 피하라 가르치면 되고 독사인지 아닌지 구별해서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예 뱀을 만날 기회조차 차단한다.

햇볕이 따가우니 낮시간에 농장에 나가지 않도록 부탁합니다.”

교무실에서 메시지가 전달된다.

우리 반 아이들을 아침에 데리고 나가 토끼밥도 주고 우리 반 고랑에 있는 잡풀을 제거해주고 들어온다.

아침에 덜 뜨거울 때 잠깐 나와서 아이들과 작물을 돌보는 것도 필요한데 오전엔 나올 생각들을 안한다.

그리고는 낮에는 뜨거워서 못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점점 잡풀은 우거지고 뱀이 숨기는 더욱 좋은 조건이 되는 것이다.

사람 손이 덜 닿게 된 초록농장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식물들은 진딧물과 해충의 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보면 초록농장에 가고 싶은데 담임선생님께서 가지 말래요.”하며 말을 건넨다.

학부모들은

작물을 어떻게 키우는지, 언제 수확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열매가 익었는데도 안 따가고 아이들은 관찰기록만 한다네요. 어렵게 농작물 재배하는 과정을 알고 농작물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공부일텐데 안타까워요.”

라고 내게 말을 건넨다.

나 역시 안타깝다.

농작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알아야 된다고 이야기했건만

지금의 동료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모른다.

그저 교감이 하자니까 따라서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초빙으로 들어온 부장이 다른 혁신학교 교사들과의 모임에서 농부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단다.

함부로 농부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농부님들 들으면 화낼 일인데,..

초록농장 입구에 적힌 글이 있다.

이 곳에서 땅의 가치와 땀의 가치, 그리고 소중한 농작물의 가치를

몸으로 배우면서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3년 전에 세워둔 안내판이다.

텃밭교육은 그저 관찰용 식물재배가 아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환경 속에 인간이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이처럼 즐겁게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얻어진 수확물을 나누는 기쁨도...

내년엔 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더 크다. 사라질 것 같은 초록농장에서의 아이들 재잘거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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