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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중서부유럽여행 셋째날-사치와 향략의 극치 베르사이유궁전

지하철을 타고 램브소 역에서 내려 퐁피두센터를 찾아갔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퐁피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국립근대미술관이라고 한다. 마치 공장인 것처럼 거대한 파이프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파이프들마다 색깔들이 달랐다. 설명에 따르면 건물내 이동수단과 관계 있으면 붉은 색, 전기배선은 노랑, 수도관은 녹색, 공기시스템은 파랑으로 구분한다고 했다.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샤갈 등의 작품이 있는데 딸아이 취향이 아니라고 내부 관람은 안했다.

퐁피두 센터를 지나 파리시청건물을 지나게 되었다. 다양한 행사들을 안내하는 현수막들을 보며

샤틀레 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여 몽빠르나스 역에서 국철을 이용하려고 역을 찾았는데 역의 구조가 이상했다. 어라!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온통 프랑스어로 적혀있어 읽을 수가 없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꽤 되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역무원을 찾아서 몽빠르나스 역으로 갈 수 있었다.

몽빠르나스 역에서 유레일을 개시(15일권이라 이제서 사용가능)하여 베르사이유 가는 열차표를 얻었다. 유레일이 있으면 국철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베르사이유에는 역이 세군데 있어서 반드시 Chantiers역에 내려야 베르사이유궁을 찾아가기 쉽단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도착하니 인산인해다. 관람티켓을 구입하려고 들어갔다가 늘어선 줄들로 인해 내부관람은 포기했다. 호화스러운 궁전내부를 보지 않아도 될 듯하여 정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계획한 호화궁전이었다고 하는 베르사이유 궁전은 넓은 정원과 그랑 트리아농, 쁘티트리아농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1682년에 파리에서 베르사이유로 프랑스의 중심을 이동시키려고 귀족까지 강제이주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단다. 1789년 프랑스혁명까지 프랑스 앙시앵 레짐(프랑스 혁명 전의 신분제라고 해야할까?)의 정치적 중심이었다고 한다. 농담삼아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귀족들이 정원에서 볼일을 봤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사실무근이고 귀족들을 비하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가 추측한단다. 베르사이유 궁전 설계도면에는 화장실이 있었으나 전시관을 늘리기 위해 화장실을 줄이지 않았을까 한다는 이야기도...

트리아농 궁전에서 물의 정원-라톤의 샘과 아폴론의 샘, 원형열주, 로카유의 나무숲, 사계절의 연못 등이 있고

쁘티 트리아농은 루이 15세가 애첩과 지내기 위한 개인 사저로 건축했으며 사치의 대명사인 마리 앙트와네트가 농사를 짓기도 했고 연극과 가면무도회에 심취했던 곳이기도 했단다.

그랑 트리아농은 루이 14세 가족의 휴양지로 대리석 기둥이 화려하며 운하를 지나 배를 타고 들어가기도 한단다.

한 사람의 왕을 위해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궁전. 이런 것을 보고 프랑스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겠지. 그렇게 들고 일어나 프랑스 대혁명의 피울림이 있었던 거지.

베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보고 돌아오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그럼에도 에펠탑 야경을 보겠다고 센강을 건넜다.

저녁이 되면 에펠탑 조명등이 켜지면서 멋진 광경이 연출된다기에 사요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요궁에서 바라보면 아주 잘 보인다고 들었었다.

사요궁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거리예술가들의 다채로운 공연도 펼쳐지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에펠탑의 조명쇼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 불빛이 밝혀지더니 멋진 광경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