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란 쿠르디'

세 살 배기 시리아 난민 아기의 사진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나조차도 큰 관심을 두지 못했던 터에 한 장의 사진 속에 아기 모습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시리아의 내전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의 난민의 대열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으면서도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해 갑작스레 미안해지고 있다. 그동안 IS단체의 잔혹한 행위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고 그들만의 종교전쟁으로 인해 시리아가 내전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힘없는 시리아 국민들의 삶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 못내 미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세 살 아기의 사진으로 인해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시리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유럽 각국에서 난민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물론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

도덕 수업을 하면서 '아일란 쿠르디'에 대해서 물었다. 아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뉴스를 안본다고 하는 아이, 신문도 안본다는 아이, 컴퓨터도 안 한다는 아이 등 다양한 핑계가 들려왔다.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사회의 현상에 대해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어른들 탓이리라. 아니, 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 나라 언론의 잘못이 더 크리라.  관련한 뉴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출처] 아가야 일어나라 _ 박노해 / 시리아 난민 세살배기 아일란 쿠르디를 애도하며

 

2011년부터 시리아라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의 참담함이 담긴 신문기사를 함께 찾아 보고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나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이동경로를 살펴보며 이 난민들이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그 머나먼 길을 떠나야하는 이유를 함께 살펴보았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 전쟁으로 인해 시리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참혹한 광경들을 함께 보고 난 후,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 나라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길 지 예상해보라 했다.

분단된 지 60여 년이 넘은 우리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평화가 중요한 이유.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하는 이유. 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남과 북이 평화롭게 통일을 했을 때 대한 민국의 미래는 어찌 될까를 전망해보기도 했다.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권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이 우선인 세상이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도 많다. 그런데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고 있는 애꿎은 시리아 국민들에게 떠돌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을 돕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쓸데없는 연민을 품는 것으로만 끝나진 않을까?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그저 끄적거려 본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함께 저 힘없는 어린 영혼의 한을 풀어줄 방법이 정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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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9.07 2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사진 차마 자세히 쳐다 볼 수가 없습니다.
    종교란 무엇이며 문화니 국가니 민족이니 그런게 다 무엇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게 종교요, 국가요, 문화라는 건데...이 어린이 죽음 앞에 모든게 위선이요 ,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자녀교육을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정답이 없다.
내 아이가 다른 세상에서 온 것도 아니고 결국 엄마아빠의 세상과 미래를 이어주려고 엄마의 배를 빌어 나온 것을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의 앞날을 결정하려한다.

한아이가 친구에게 말했다. "넌 엄마랑 똑같애." 그말을 들은 한 아이가 "난 엄마 안 닮았어. 내가 왜 엄말 닮았다는거야." 내가 거들었다. "엄마가 낳았는데 엄마닮은 게 사실아냐?" 아이는 엄마닮았다는게 싫단다. 자꾸 소리지르고 혼낸다고. . .

나도 부모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아이가 날 닮은 점, 특히 단점을 닮았다는 것이 화가 날 때가 많았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기 싫기때문에, 아이가 부모의 단점은 절대로 안닮았으면 하고 바라기때문에 자녀에게 더 화를 내지않나 생각한다.

내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졌던 자녀교육 원칙은 자기스스로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여주는 것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 두가지였다.

해야할 일에 대해 계획성있게 살아가도록 습관을 들여주었고 교사로서 올바른 생각으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들과 딸, 둘 다 초등학교에 조기입학을 선택했다. 주변에선 공부를 가르친 후에 보내라했지만 많이 알고 학교가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각했고 아들과 딸 모두 학교를 가고싶어했다.

아들은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해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사법고시를 보라고 추천했으나 그 지겨운 공부, 숨막히는 공부를 원하지않아 외교관의 꿈을 가졌었다. 그런데 대학입학 후 외교아카데미를 다녀야한다는 제도로 바뀌자 꿈을 접었다. 그리고는 다른 꿈을 꾸고있는 아들은 정말 성실하다. 어디가서 알바를 해도 자신감있고 성실하다고 칭찬을 듣는다.

딸아이는 학교를 가고싶어 조기입학했는데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담임선생님마다 아이공부 좀 시키라고 나무란다. 딸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나머지공부를 하는 날도 많았고 아프다고 학교 안가는 날도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고민이 많았다. 그랬던 딸아이가 지금은 수학전공을 선택했고 수학학습지를 만드는 알바를 하고 있다. 사실 그림솜씨가 있어보여서 미술을 전공할 줄 알았던 딸이 의외로 수학을 전공한다했을 때 많이 놀랐다. 나역시 수학을 좋아했는데 내가 다닌 시골고등학교에 문과만 있었기에 전공선택을 못했었다. 무튼 딸아인 또 그렇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아들,딸 둘 다 사교육을 받은 게 많지 않다. 아들은 좋아하는 영어회화만 꾸준히 했고 고3때 수학, 논술학원 다닌것이 전부고 딸은 학원은 질색이라 미술학원조차도 안다녔다. 고1때 미대가려고 일 년 미술학원,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느라 재수학원 일 년 다닌 것이 학원경력 전부다. 두 아이 모두 많은 시간들을 책 읽는데 투자했다. 책을 많이 읽은 게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세종시교육청페북에서 박노해시인의 시를 발견했다. 너무 많은 것을 해주려는 이 시대의 부모에겐 와닿지 않겠지만 들려주고 싶은 시이기에 퍼왔다.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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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9.03 0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이스 북으로 공유해놓고 갑니다.
    많은 부모들이 한번씩 읽어야겠습니다.

  2. 좌충우돌 양돌이쌤 2015.09.03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녀교육에 정답은 없는데 자꾸만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만들어가는게 안타깝네요.

전교조 선봉에 서서 늘 이끌어주시던 선배님의 명예퇴임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참교육을 하겠다며 평교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다 퇴임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전교조 창립즈음해서 뜻이 맞는 동지들과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맞이하겠다 굳게 약속했건만 교감으로 승진해서 퇴임하게 되어 억울함을 토로하셨다. 정년퇴임과 달리 명예퇴임을 선택하는 평교사에게 교감의 호칭을 붙여주는 관행이 있단다. 이유인 즉,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교감으로 퇴임하면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퇴임식장에서 교감이라고 어깨 으쓱하게 해주겠다는 것인지...

독재와 억압의 암울한 교육현장을 당당히 싸우며 지켜주신 선배님들의 헌신하신 뜻을 후배들에게 이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늘 죄스럽다. 퇴임을 선택하시는 선배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음이 사실이기에 축하해드리지도 못하고 떠나는 선배교사를 원망하기도 해본다. 여러가지 사유로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런 상황들이 전교조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집회때마다 자리를 지켜주시던 선배님들께서 명퇴를 선택하게 되니 해가 갈수록 집회현장이 썰렁해진다. 보다 더 강해지고 젊어졌어야 할 전교조가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자리매김으로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더없이 씁쓸하다. 그래서 늘 선배나 후배 모두에게 죄스러운 마음이다.

1989년 파면과 해임을 불사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전교조의 깃발을 남은 우리가 기필코 지켜내야하는데 법외노조 시비가 붙어 올해 안으로 판결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법외노조가 된다해서 공중분해가 될 전교조의 저력은 아니다.  그러나 합법화로 당당하게 활동하고자 했던 이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까봐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 땅에 전교조가 없었다면 투명하고 인권적이며 민주적인 교육현장으로의 길이 요원하지 않았을까?

통일을 염원하며 국토순례를 마다않고 세월호참사규명을 위해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선배님 퇴임을 축하드리는 의미로 동료조합원의 시낭송이 있었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박노해 시선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사실 어찌보면 선배님들이 우리들보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삶이 더 각박하고 해학과 풍자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낭송을 듣고 나서 선배님께선 들뢰즈의 철학을 이야기해주며 '죽창가'를 들려주었다. 전교조의 방향에 대한 안타까운 조언도 했다. 앞으로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전교조를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나 역시 당당하게 퇴임을 맞고 싶다. 전교조를 지켜내기 위해  온 몸으로 맞서왔던 선배님들의 헌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한 후 멋지게 퇴임을 맞이하고 싶다. 선배들의 노고에 비할 만큼은 안되겠지만 오늘도 열심히 지켜내야지. 전교조.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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