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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하는 교육

2021년 수능개편안, 공교육정상화의 길일까?

새 정부의 수능개편안이 발표되었다.

현장의 소리들은 기대반, 우려반 교차되는 가운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따가운 질책들이다. 한겨례신문에 실린 칼럼을 읽어보면 2021 수능개편안이 교육개혁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평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개편안 1안과 2안은 절대평가 적용범위만 다를 뿐, 지금의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대입제도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모르는 이가 없을텐데 어찌하여 새정부 교육부 수장을 맡은 김상곤장관은 공교육 파행을 막을 개혁안을 내놓지 않는걸까?

삼수를 하고 있는 딸이 6월 수능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내왔다. 2등급이던 영어가 드디어 1등급이 되었다고 자랑한다. 영어가 1등급이 나온 이유는 사실 절대평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였던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1등급이 되었다고 자랑하는 딸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절대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시험부담은 줄어들지 모르나 1등급을 받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은 분명하고 어차피 대학은 좁은문을 들어가야하는데 그 좁은문을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생기는 걸까? 대학평준화가 실현되지 않은 이상 변별을 하지 않고는 서열화된 대학에 모든 수험생을 배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

절대평가를 확대한다고 해서 이 나라 공교육이 정상화될거라는 기대감을 갖기는 어렵다. 변별력이라는 문제때문에 또다른 형태의 사교육시장이 성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문재인정부는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두 가지 안을 수능개편안이라고 내놓았을까? 오히려 학교현장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릴 뿐인 개편안을... 현재 중학교3학년 학생들과 그 부모는 복잡한 머릿속 계산을 해야한다.

초등 아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치맛바람 정보와 가진 경제력을 동원하여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만큼 아이들이 똑똑하다. 그 조그만 뇌에 뭘 그리 많이 넣어줬는지 아는 게 많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더 많이 주입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문재인정부마저도 모르쇠하는 건가, 아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가?

공교육의 파행은 대학입시제도, 아니 대학서열화에서부터 기인한다. 우습게도 차근차근 공부를 해서 전공을 정하고 대학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명문대의 잘나가는 학과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정해지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해주는 명문대에 들어가야하고 그 명문대학을 나와야 누구나 인정해주는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사회, 그것이 행복한 미래라는 인식 때문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자녀의 인생을 위한다는 핑계로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부모자신의 욕망때문일지도...

대학입학이란 것이 삶에서 별 의미가 없는 절차라면 어떤 식의 수능이든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이 대한민국에서의 대학입학은 한 사람의 미래 행복이 결정되는 아주 중요한 단계로 인식되어있기에 대입제도의 신중한 손질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되었든 새롭게 발표된 수능개편안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개편안이 되어버렸다. 절대평가로 인해 공부를 좀 덜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수능시험으로 등급은 나뉘어져야하고 국영수 중심으로 공교육현장이 채워져야하는 것은 변함없는 그런 개편안이다.


 2001년 어느 학부모가 교육과정 설명회 현장에서 갑자기

우리 아이와 함께 목욕하다가 아이의 정강이 안쪽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여기까지 듣고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담임맡고 있는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체육시간에 공놀이나 줄넘기 같은 것만 했는데 처음으로 체육시간에 철봉을 배웠다는거예요. 철봉에 다리를 걸다가 멍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체력이 약한 아이라 걱정했는데 다양한 체육활동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하기에 열심히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그 아이는 영특한 여자아이였다. 너무 마른 체격이라 걱정스러웠던 아이.

아이들에게 체육시간에 공만 던져주면 쉽게 수업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굳이 위험한 활동들을 하지 않고 쉽게 수업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공을 주고 하는 수업이라 하여 아나공체육수업이라고 불리웠다. 십여 년 전 이야기지만 당연한 수업을 놓고도 감사의 인사를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도록 안내하며, 공감능력과 창의력을 갖출 수 있도록 예술적 안목을 키워주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공교육을 뒷받침할 그런 수능개편안이 없을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정권에 따라 바뀌는 일회용 교육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마련된 교육정책을 기다리는게 무리한 욕심은 아닐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