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내게 어떤 의미일까?'

책을 읽다가 문든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교조가 내게 어떤 의미지?'

 

1989년 대학졸업 후 발령대기중이었다. 이곳저곳 돈벌이하러 떠돌다가 돌아온 고향에서 대학선배들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 옆집에서 하숙하는 교사들 몇몇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고 당시 정보과 형사이던 아버지께서 일러주셨다. 그 교사들에게 배우고 있던 동생들의 말에 의하면 '참 좋은 선생님들'이라고 했다. 그 무렵 유일한 한글신문이요, 진보신문이었던 한겨레신문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눈을 조금 뜨는 정도에 불과했던 나는 옆집 교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대학선배를 논산의 전교조사무실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전교조를 알게 된 지 얼마 안되었을 즈음 전교조에 대한 칼날이 휘둘러졌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사대생들 발령 안내는 건 전교조때문이야."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쏟아놓기도 했다. 그렇게 전교조를 알게 되었고 그 때 만난 대학선배는 내 인생의 반쪽이 되었다.

1990년 결혼해서 남편을 따라 태안의 작은 중학교 부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비공식적인 태안지회장을 했던 남편이 1991년 학부모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전교조를 탈퇴하지 않고 현장에서 활동하던 활동가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을 부추겨 빨갱이로 몰았던 사건이 경기도와 충청남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경기도에서는 초등학교 여교사 혼자 당해서 심적 피해가 컸다고 들었고 충남에서는 남편과 동료 등 5명이 피해를 경험했다. 남편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쌀도 팔아다주고 집에 데려와서 공부도 시켜주어 학부모들의 질타를 받을 일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런 일이 발생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일이 갓 지난 아이를 업고 학부모들앞에 겁없이 섰다. 도대체 내 남편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와서 완력을 쓰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학생들에게 통일을 이야기하고 풍물을 가르치는 교사는 빨갱이란다.(지금도 빨갱이라면 다 통하는 세상이니 별반 다를게 없지만) 그 당시에도 그렇게 몰려왔던 사람들 중에 학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어쨌든 어이없어하는 나를 남편은 그 자리에서 데리고 나와 집에 가있으란다. 그리고는 며칠 후 남편의 생일에 징계처분통지서를 받았다. 타군전출명령서와 함께....물론 동료 5명도 똑같이 처분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다. 인터넷을 검색해 당시 사건일지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사건을 알고 있는 분의 블로그가 있어 반가웠다. 

내가 경험했던 전교조는 항상 탄압받는 전교조였다. 그러나 그렇게 탄압받는 전교조임을 알면서도 조합원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전교조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전교조가 있었기에 지금의 교육현장이 좀 더 나아졌으며 교사들의 자유로운 교육실천이 이뤄진 것이라 믿는다. 전교조가 교육현장을 깨끗하고 민주적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1989년 당시 문교부(지금은 교육부)가 긍정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 '전교조 교사 식별법'에 대한 공문이다.

가끔 주변에서 묻는다." PD계열이냐 아님, NL계열이냐?" 진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노동운동 중심의 PD와 통일운동 중심의 NL로 구분되어진다고 하는데 난 사실 그렇게까지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다. 저렇게 구분하는 것조차도 분명한 지 모르겠다. 전교조에서는 PD계열인 '교찾사'진영과 NL계열인 '참실련'진영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잘 모르겠다. 누가 PD계열이고 누가 NL계열인지 관심도 없다. 난 어느 한 쪽에 깊이 빠지는 것은 싫어한다. 그저 교육현장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전교조운동에 발을 담갔을 뿐이다. 교사로서의 삶을 살면서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해 전교조에 참여한 것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되면 징계를 각오하더라도 적극 참여하나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될 일이라면 참여하지 않는다.

1999년 전교조 합법화 이후 전교조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는 견해들이 많다. 그래서 요즘 주변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전교조 조합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전교조에 남아야할 것이냐 아님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야 할 것이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국민들의 신뢰는 뒤로 하더라도 교사들로부터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늙은 전교조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전교조의 방향은 바뀌지 못한 채 선배교사들이 이루어놓은 교육 운동마저 퇴색시키고 있는 모양새이다.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전교조 자신의 혁신은 못하고 있다는 혹평도 듣고 있다.

언젠가 학교비정규직이었던 선생님이 내게 커피와 함께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래서 난 여전히 전교조 조합원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도 단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나를 경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를 믿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으니 나 자신을 더욱 단단히 단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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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9.22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독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길.... 그것이 옳은 길인데 어쩌겠습니까?
    정도니까 가야겠지요. 아무리 앞에 장애물이 있더라도.... 저는 전교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이 알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힘내시고요.
    남편의 오마이뉴스 글 남의 얘기 같지 ㅇ낳습니다. 귀한 자료 잘 간직하셔야겠습니다.

    • 좌충우돌 양돌이쌤 2015.09.22 1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참교육의 댓가가 그렇게 혹독해야하는지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해직을 각오했을 정도였죠. 그 때의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졌어도 여전히 열심히 살고있더라구요.

문득 페친의 글을 읽다가 격하게 공감하여 교포(교장승진포기)의 길을 걷게된 까닭을 써보련다. 교단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연수를 들을 때나 회식자리에서나 승진이야기를 듣게 된다.
학교는 진즉부터 교목집단(교장승진이 목표인 집단)과 교포집단으로 나뉘어져 업무를 맡는다. 특히 나같은 전교조 조합원 대다수는 교포를 선택하게 되는데 관리자들이 회유하고자할 때 "승진해야지, 언제까지 평교사만 할거야? 승진해서 바꿔보면 되잖아."라고 부추긴다.

전교조출신이었다가 승진한 장학사를 포함한 관리자들이 전교조 두둔하기보다 전교조 욕하는 경우를 간혹 본다. 자신들이 전교조조합원일 땐, 보다 합리적으로 참교육을 지키기위해 노력했었다며 "요즘 전교조 많이 퇴색했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창립 당시 암울했던 교단에서 참교육하겠다고 나섰던 선배들의 뜻을 받들겠다 다짐했으나 지금은 그 때보다 조금 나아진 현장이다. 그런데 전교조는 제자리다. 그러니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인다. 교장의 말한마디에 꼼짝 못하고 순응하며 좋은(?) 학부모의 자녀 맡으려고 학년말마다 선물들고 교장실 기웃거리는 일은 이젠 드물다. 학습부교재 팔려고 업체에서 접대하려는 노력도 덜 하다. 보충수업(지금은 방과후수업)도 안하면서 관리수당 달라는 교장,교감, 행정실장도 별로 보이질 않는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1989년 전교조출범당시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기에 전교조의 참교육 기치는 여전히 높이 평가받아야한다. 다만 지금의 전교조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잠시 이야기가 딴 길로 샜다. 교육계의 승진구조에 대해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손질을 못하고 있다. 세종시교육청이 젊은 교사들의 과도한 승진열풍때문에 교감자격연한을 20년이상으로 상향조정했을때 젊은 교사들 특히 15년 경력 교사들의 반발이 심했다. [교육감에게 말한다]게시판을 도배하듯 반발했고 공청회자리에서 대놓고 반항했다. 교장단에서조차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교사들을 손안에 넣고 흔들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결국 세종시교육청은 한 발 물러섰고 교감자격 경력을 교육부수준으로 낮춰버렸다. 학교는 경쟁가도를 달리고자 하는 젊은 교사들이 많이 보인다. 승진을 꿈꾸며 세종으로 오고자 하는 타지역 교사들이 늘었다. 그야말로 기회(승진기회)의 땅으로. . .

교사ㅡ교감ㅡ교장 또는 교사ㅡ장학사ㅡ교감1년ㅡ교장. 이렇게 승진하는 구조가 교육을 위해 바람직한가? 예전에 한 교육감이 예비교사들 모아놓고 "전교조교사의 말로가 비참하더라."라고 말해서 쫓아가 항의한 적이 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평범한 교사로 한평생을 보내면 비참할까? 실제로 교장으로 퇴임하면 노년이 훨씬 더 행복할까?

승진을 위한 노력을 차라리 아이들을 위해 투자한다면 노년에 제자들이 찾아오는 기쁨이 더 크지않을까 싶다. 화려한 명패와 혼자 쓰기엔 넓다란 방을 차지하고 지내다 퇴임하고는 이전보다 초라한 노년을 견디지못하는 교장출신들을 더러 본다.

프레네연수때 만난 스웨덴 교사 Mia는 교장하다가 교사로 재직중이라고 했다. 유럽의 교장은 교사보다 업무도 많고 가끔 수업도 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그럼 안되나? 교장, 교감, 교사가 그저 하나의 보직으로 존재하는 그런 구조 안될까? 경기도교육감이 교장도 수업해야한다고 말했을 때 교장들이 반발했다는데 교단에 있다면 수업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야 하지않을까?

(이미지출처: 오마이뉴스)

신규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는 멋진 교장이 보고싶다.


임용되자마자 승진을 위한 경쟁대열에 참여하는 신규들에게 말하고싶다. ㄷ교사는 아이들과의 삶 속에서 행복하다고. .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라고. . .그래서 난 교포집단이 되었다고. . . 이 삶이 행복하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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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8.31 2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교육이야기 무터킨더 박성숙씨가 9월이나 10월 쯤 세종시에 오실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어느 단위에서 그분에게 독일 교육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의 승진구조와 무상교육 그리고 학생인권 등등에 대해...

  2. 백순주 2015.08.31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반가운 분들이 다 계시네요.
    교육청에 가면 한번 뵙고 싶어요 양돌이 쌤~♡

전교조 선봉에 서서 늘 이끌어주시던 선배님의 명예퇴임을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참교육을 하겠다며 평교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다 퇴임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전교조 창립즈음해서 뜻이 맞는 동지들과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맞이하겠다 굳게 약속했건만 교감으로 승진해서 퇴임하게 되어 억울함을 토로하셨다. 정년퇴임과 달리 명예퇴임을 선택하는 평교사에게 교감의 호칭을 붙여주는 관행이 있단다. 이유인 즉,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교감으로 퇴임하면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퇴임식장에서 교감이라고 어깨 으쓱하게 해주겠다는 것인지...

독재와 억압의 암울한 교육현장을 당당히 싸우며 지켜주신 선배님들의 헌신하신 뜻을 후배들에게 이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늘 죄스럽다. 퇴임을 선택하시는 선배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음이 사실이기에 축하해드리지도 못하고 떠나는 선배교사를 원망하기도 해본다. 여러가지 사유로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런 상황들이 전교조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집회때마다 자리를 지켜주시던 선배님들께서 명퇴를 선택하게 되니 해가 갈수록 집회현장이 썰렁해진다. 보다 더 강해지고 젊어졌어야 할 전교조가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자리매김으로 교육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더없이 씁쓸하다. 그래서 늘 선배나 후배 모두에게 죄스러운 마음이다.

1989년 파면과 해임을 불사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전교조의 깃발을 남은 우리가 기필코 지켜내야하는데 법외노조 시비가 붙어 올해 안으로 판결이 날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법외노조가 된다해서 공중분해가 될 전교조의 저력은 아니다.  그러나 합법화로 당당하게 활동하고자 했던 이전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까봐 죄스러울 따름이다. 이 땅에 전교조가 없었다면 투명하고 인권적이며 민주적인 교육현장으로의 길이 요원하지 않았을까?

통일을 염원하며 국토순례를 마다않고 세월호참사규명을 위해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선배님 퇴임을 축하드리는 의미로 동료조합원의 시낭송이 있었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박노해 시선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사실 어찌보면 선배님들이 우리들보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며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삶이 더 각박하고 해학과 풍자가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낭송을 듣고 나서 선배님께선 들뢰즈의 철학을 이야기해주며 '죽창가'를 들려주었다. 전교조의 방향에 대한 안타까운 조언도 했다. 앞으로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전교조를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나 역시 당당하게 퇴임을 맞고 싶다. 전교조를 지켜내기 위해  온 몸으로 맞서왔던 선배님들의 헌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단련한 후 멋지게 퇴임을 맞이하고 싶다. 선배들의 노고에 비할 만큼은 안되겠지만 오늘도 열심히 지켜내야지. 전교조.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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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모 고등학교와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사의 성범죄에 대해 시끄럽다.  교내에서 여교사 또는 여학생들에게 교장과 남교사가 파렴치한 성희롱과 성추행 등을 자행하고도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닌다.  피해자들을 염려하여 학교이름이나 해당교사에 대한 정보가 감춰지고 있다.  그러다 유야무야되는 건 아닌가? 

(사진 : SBS8시 뉴스 캡쳐)

정부여당의 국회의원이란 자가 백주대낮에 호텔에서 성폭행을 하고도 무혐의처리되었고 그런 사실들에 대해 같은 당 여자 국회의원의 발언 또한 가관이다. 남편과 아들이 다 그렇게 사는 모양이다.

이 나라에서는 성범죄에 대해  인심이 후한 걸까?

생각해보면 중학생이던 1970년대에도 학교교사 중에 노름을 하거나 술에 취한 채 수업을 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때 그렇게 생활하고도 그런 교사들은 멀쩡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젊은 남교사가 담임이었던 때의 일이다. 여중생의 눈에 비친 그 남교사는 꽤나 매력적이었던 듯 하다. 당번을 하던 어느 날, 담임이 부르더니 "야, 내 방에 가서 청소하고 와"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담임은 학교부근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까칠했던 나는 "제가 왜 선생님 방을 청소해야 하죠?"라고 물었더니 "임마, 학급당번은 담임선생님 집 청소도 해야하는거야."라는 것. 물론 난 청소하러 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년을 지내고 학년이 바뀌고 담임이 바뀌었다. 그런데 학교에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그 젊은 남교사가 여학생들을 집에 불러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교사는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다. 특별한 징계를 받지 않고 단지 전출만 갔다. 그리고 지금은 관리자가 되어있다.

이렇듯 성범죄 국회의원이나 교사 등에 대해 인심이 후한 나라가 가장 야박하게, 가장 매몰차게 교사를 징계하는 사유는 오직 전교조 관련한 경우다. 교육계 비리를 찾아내고 양심적으로 가르치고자 참교육을 외치며 교육현장을 바꿔내려고 노력했다는 이유로 1989년 길거리로 내몰았던 비정한 정부. 2014년 9명의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시행령만으로도 법외노조를 만들어버리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우스운 정부.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어째서 지식인의 성범죄에 대해서만큼은 바다처럼 넓은 아량을 베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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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5.08.06 2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가 막힌 나라입니다.
    선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는 나라...이런 현상을 두고 윤리며 도덕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인성교육 웃기는 쇼입니다. 학생인권조례부터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