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 생각하는 교육

(66)
'스승의 날'을 축하하며 가정의 달 오월에 뜬금없이 끼어있는 스승의 날이 부담스러웠다. 내 모교에서 유래된 '스승의 날'이라 자부심을 가질 만한데... 갑작스런 제자들의 연락을 받고 그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시골마을 학교로 향하는 마음이 설레었다. 스승의 날이 학교근무 중에는 부담스러웠던 날이었지만 이제는 자유인이라 맘놓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려서 아저씨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늙은 생각은 못하고 아이들 커버린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몸만 커버린게 아니라 생각도 많이 커졌다. 배려하는 마음도 듬직하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한 작은 시골초등학교라 아이 한 명씩 엄마들이 차를 태워오다보니 자연스레 엄마들과도 오랫만에 안부를 묻는다. 만나는 아이나 아이의 엄마는 한결같이 "..
100주년 어린이날! 꽃보다 예쁜 온 세상 어린이들이 더 많은 날들을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축하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방정환 선생님에 의해 어린이의 인권과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후, 1923년 5월 1일에 '어린이날'로 공식채택한 날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오늘이다. 100년이 흐르는 동안 어른들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그리고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에 왜 어린이 인권을 생각하는 '소년 운동의 기초 조항'이 발표되었을까? 1922년, 1923년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다. 일제에 의해 억압받고 탄압받았던 그런 시기.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에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했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어린이의 인권과 존엄성을 항상 존중해주고 있다면 굳이 어린이날을 기념..
난 꼰대였다 새로운 교육을 해보자고 동료들에게 제안했다. 70여 명의 동료 중 서너 명만이 반응을 보였다. 하던 대로 하겠다고 그냥 내버려두란다. 나도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업무부장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명퇴를 앞 둔 내가 학교의 교육과정을 책임져야 할 부장이 되고 말았다. 자의가 아니라 타천에 의해서... 미리 선전포고를 했다. 나에게 부장을 시키면 난 독재를 할거라고... 결국 난 부장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동료교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갖도록 계속 강요를 했다. 경험해 볼 기회만 강요했을 뿐 실천하지 않았다 해서 문제를 삼은 건 아니다. 새학기 교육과정 준비 방식을 바꾸고 기존의 두툼한 학교교육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형식적인 부분을 덜어내어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물론 새로 부임한 교장이..
교육감후보는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물론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밀고 예비후보라며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운전하고 지나오는 길에 어느 교육감 예비후보의 후원회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그 예비후보가 교육감이 된다고? 단순히 그 후보의 성향때문이 아니라 오래 전 그 사람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던 동료의 일이 여전히 기억에 있기 때문. 오래 전부터 교육청에 전문직으로 있었던 그는 어느 학부모로부터 민원을 접수받은 후 나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을 그 학부모집에 데려가 모욕적인 언사와 거친 행동까지 감수하게 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학부모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으나 그 이후에도 그 학부모는 사사건건 두 교사에게 부당한 민원을 제기해왔고..
따로 또 같이 어느 해인가 아이들과 함께 정했던 급훈이 따로 또 같이였다. 혁신교육을 하면서 중요시 했던 따로 또 같이. 아이들과의 교육활동 뿐만 아니라 교육공동체 모두 생각해봐야할 것이 '스스로' 그리고 '함께'가 아닐까?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각자의 역할을 가르쳐주는 것. 그것이 혁신교육을 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이었다. 중등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다가 초등교사로 임용된 이후, 초등학교에서 낯설었던 풍경은 문닫힌 학급교실이었다. 같은 학년에 다섯 학급이 있는 학교나 두 학급이 있는 학교 심지어 한 학년에 한 학급이 있는 소규모 학교조차도 학급교실문을 열지 않고 있어 개별 학급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또 서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학교장이..
교사자치는 왜 머뭇거릴까 학교자치를 완성하기 위해 교사자치 아니 교직원자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사에 국한하지 않고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모두에 의한 자치가 필요하다. 학교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교직원자치, 교사자치의 효능감을 맛본다면 학생자치와 학부모자치를 포함한 학교자치가 함께 완성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교육청에서 제시한 학교평가 자율지표의 민주적 학교운영 체제 영역을 살펴보면 우선 학교의 비전과 철학을 교육공동체가 함께 이해하고 실천하는가? 둘째,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학교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며,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가? 셋째,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교직원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학교의 환경과 공간이 구성원의 참여와 집단지성에 의해 구성되며, 교육활동 중심의 예산을 편..
학교자치, 학생자치 혁신교육을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가장 비중을 둔 부분이 자치였을 것이다. 교사의 자치역량을 키우고, 학생의 자치영역을 확장하고, 학부모들의 자치활동을 보장하는 교육3주체에 의한 학교자치.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인 민주시민을 제대로 길러내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장학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이 학교를 지휘하고 감독하던 시기, 관리자에 의해 학교교육비전이 수립되고 관리자의 통제아래 학교교육과정이 운영되었던 시기에 위로부터의 통제가 그대로 반영되어 학생자치영역 또한 교사에 의해 계획되어지고 교사에 의해 운영되었다. 학부모는 어땠을까? 학부모회라고 조직은 되었으나 학교에서 협조를 구하는 영역에 수동적으로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혹여라도 아이에게 도움될 까 싶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았던..
자녀교육 딸이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에 함께 갔다. 쥔장은 내게 축하인사를 건넨다. 딸을 어떻게 키웠기에 그렇게 대학을 잘 가느냐고 묻는다. 대학을 잘 간다는 것의 의미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내가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딸이 꿈을 찾아 스스로 알아서 갔다"고 했더니 자기가 만난 명문대를 보낸 엄마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답한다고 했다. 자녀 스스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않은 자녀교육법이라며... 예전부터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공 아니 가문의 영광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의 정보력이 중요하다는 웃픈 이야기가 있었다. 아들과 딸에겐 친가나 외가 모두 할아버지의 재력은 없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