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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삶

당했다. 보이스 피싱!

업무차 서울에 있었다.

오후 네시 반쯤 아이로부터 보이스피싱 당하고 있는 거 같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했다가 아니라 당하고 있다길래 아직은 피해를 안당한 줄 알고 답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냐고...

인터넷사이트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문무일검찰총장 서명이 들어간 문서다.

검찰사칭이니 상관마라 했더니 이미 돈을 건네줬다는 것이다.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문자로 할 이야기가 아니라 전화를 걸었더니 통화중이다.

아이가 아직도 범인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서둘러 112로 신고를 했다. 혹시라도 현재 통화유지상태이니 위치추적을 하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알고있는 내용만으로 신고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112에서 딸아이 위치추적을 한 게 아니라 신고한 나의 위치를 추적했나보다. 내가 있는 곳의 관할 경찰서라며 연락이 왔다. 피해를 당한 건 내가 아니라 아이이며, 그 아이가 지금 범인과 통화를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아이와 찾은 후 통화를 해보라고 했다.

결국 경찰은 아이를 찾지 못하고 아이가 범인과 전화를 끊고 나서 나와 통화를 했다어디있냐고 물었더니 집앞에서 돈을 가져간 수사관을 기다리고 있단다. 불법자금이 아니면 돈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며 기다리고 있다기에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혹시나 범인들이 아이를 어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해와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업무보던 중이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더 큰 일이 생기기전에 아이에게 가봐야할 것 같아서 택시를 잡으러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다 퇴근무렵이라 택시잡기가 쉽지 않아 마침 도착한 시내버스를 올라탔다. 차는 밀려들고 한참을 가야하는데 불안감을 씻을 수 없어 내게 연락했던 담당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경찰관을 보냈고 그 경찰관이 아이를 만나 피해조사를 하는 중이며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한다고 말하기에 내가 갈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아이를 만나 경찰관과 함께 범인에게 돈을 건네줬다는 장소를 가보았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을수록 왜 그렇게 순진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아무 의심을 하지 못한 영악하게 대처하지 못한 아이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이 놀란 아이에게 나무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수업을 듣기위해 학교에서 있었는데 오전 1140분쯤 전화가 왔단다.

사건번호를 이야기하면서 비공개수사로 불법자금의 흐름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아이의 주민번호를 대고는 아이 명의로 불법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해명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 위치추적을 당할 수 있으니 휴대폰을 통해 위치를 알 수 있는 모든 기능을 꺼라, 그리고 수사관을 만나도 아무것도 묻지말고 휴대폰으로 이야기하는 지시사항만 따라라, 은행에도 불법자금관련한 조직원이 있으니 은행직원이 물어도 답하지 말라 등등 주의사항을 이야기했단다. 학교 수업도 빠지고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현금으로 찾으라 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라 했으며, 수사관을 사칭한 공범자에게 현금을 전달하는 과정동안 계속 휴대폰으로 아이에게 할 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가 끝나면 현금을 돌려줄테니 집앞에서 수사관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면서 다섯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나보다.

아이가 범죄조직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며 서울중앙지검을 사칭한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렵고 놀랐을까 싶으면서도 자신의 신분증을 잃어버렸었기에 도용당했을 거라 생각하며 아무 의심도 못하고 불법자금이 아닌 걸 증명하려고 통장의 돈을 모두 인출해 낯모르는 사람을 겁도 없이 만났다는 사실에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를 보며 걱정이 많아졌다. 공부만 시킨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쉽게 당했는지, 그러다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또 한편으로는 많은 현금다발을 찾아가는 아이에게 은행직원은 물어보기만 했을 뿐 경찰에 왜 신고해주진 않았을까 원망도 해봤다. 가끔 뉴스에 보면 은행직원이 기지를 발휘해 피해를 막았다고 하는데 전세금으로 준비해 둔 돈이라 적지않은 돈을 통장에서 남김없이 현금으로 인출하는데도 왜 은행원은 좀 더 적극적으로 막아주지 않았을까 원망도 했다. 적은 돈이 아니라서 현금으로 들고 다니다 소매치기를 당할 수도 있을텐데 왜 ?

신고를 했던 시각에 경찰관은 왜 긴급 출동해주지 못했나 싶기도 하고...

부질없이 누구를 원망하랴....

경찰서에서 피해진술서를 꾸미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현장조사 경찰관이 집가까운 경찰서에서 조사받는게 사건처리에 빠르다고 안내하기에 그러자 했다. 현장조사를 나온 경찰관은 내가 신고했기 때문에 신고지점관할 경찰서에서 파견나왔고 아이가 피해를 당한 사고지점은 관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가까운 경찰서 민원봉사실에서 지능팀으로 가라고 말해줘서 찾아갔더니 보이스피싱 현금피해는 지능팀이 아니라며 강력계를 찾아가란다. 강력계를 찾아 만난 경찰관과 현장파견 경찰관 사이에 의견이 오락가락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다. 이런 피해가 더 생기기전에 막기 위해서 피해신고를 하려고 온 것인데 경찰관들끼리 어느 관할인지 놓고 의견이 갈렸다.

화가 나서 한 마디했다. 어차피 아이가 스스로 건네줘서 피해를 당한 현금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빨리 피해조사를 해줘야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뭔가에 홀리듯 당한 아이를 집에 가서 빨리 쉬게 해주고 싶은데 이 나라 경찰이 시민을 앞에 두고 의견충돌을 벌이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

결국 현장파견 나왔던 경찰관은 돌아가고 찾아간 경찰서의 경찰관이 내가 신고했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처리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설명하며 신고지 관할 경찰서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여 바쁜 퇴근시간에 도로를 메운 차들과 함께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또다른 경찰서에 도착했다.

이 경찰서에서 강력계 경찰관이 피해조사서를 작성하려는데 또 누군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조사해야한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일단은 피해진술서를 작성해보자고 우리를 만난 경찰관이 이야기를 했다. 아이가 돈을 받아간 여자의 캐리커쳐를 보여주고 통화녹음이야기도 했지만 별 도움은 안되었다. 아이는 나름대로 통화를 오래 유지하면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하여 범인과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위치추적을 꺼두었던 때문인지 그런 노력들은 반영되지 않았다.

담당 경찰관이 최근 이런 사례의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이십대가 많다고 한다. 예전엔 계좌이체로 당했지만 요즘은 이렇게 현금으로 건네받는 수법이란다. 그렇게 피해진술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여학생이 보이스피싱을 당해 현금을 줬다고 신고하러 들어왔다.

결국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아이가 확인을 마친 후 경찰관과 함께 돈 건넨 장소에 대한 현장실사를 한다며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 준 시각이 저녁 8시 반 정도였다. 신고한 시각부터 네 시간만에 절차가 끝난 셈이다.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들을 찾아보았다.

금융감독원 사이트에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고 아이의 경우와 유사한 사례가 한 건 올라와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는 아이를 보며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는 아이가 안 다친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순진한 아이가 또 이런 일을 겪을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가끔 아들딸이 학교에서는 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안가르쳐주는지 답답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살아내기 쉽지 않은데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힘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할 우리 어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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