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아니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를 거라는 생각이다.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옳음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게 있다. 그러나 각자가 처한 문제상황 속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르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서 보여주는 행보들은 잘한다고 박수 받을 일도 있지만 잘못한다고 욕먹을 일들도 있다. 촛불시민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함께 촛불을 들어 안하무인의 박근혜를 탄핵하고 막무가내로 권력을 행사하던 보수정권을 무너뜨려 문재인정부가 탄생하도록 모였던 시민들은 이제는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져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내 기준으로 잘했다고 생각되면 박수를, 잘못했다고 판단되면 따끔한 지적을 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나!

최근 동료 몇몇과 문제해결방식에 대해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 동료들은 내게 서운하다고 한다. 왜 자신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다.

난 조금이라도 객관적이고 싶었다. 객관적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느 한 쪽이 잘못된 생각(내 기준이겠지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설득을 하든 설득을 당하든 토론으로 결론을 정리한다. 토론을 하면서 상대방의 어떤 의견이 오류를 가지고 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짚어주고 상대방도 나를 설득을 하든 내게 설득을 당하든 결론내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도 나와 똑같은 의견을 가질 수 없고 설사 같은 의견인 듯 보여도 세밀한 부분에서는 차이를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장면에서 무조건 공익을 위해 사익을 양보하라고 말할 수도 없고 사익이 존중받을 측면에 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막무가내로 목소리만 높이고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그런 문제해결방식이 싫기 때문이다.

지금껏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내가 그들의 편에서 관리자들과 싸워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못된 관리자가 아니라면 관리자들을 같은 교육자로 보고 대화를 통해 설득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특히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가 조성된 학교에서는 더욱 관리자들의 의견도 존중하는 편이다. 그들도 하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관리자라는 이유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리자, 적절치 않은 낱말이다. 교장과 교감, 의견하나를 말하더라도 자칫 자신의 의견이 명령으로 내비칠까 걱정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교사들 스스로가 교장과 교감의 의견을 들으면 따라야하는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또한 교사인 우리가 넘어서야할 장애물이 아니겠는가!

업무경감차원에서 수업이 없는 교장과 교감이 업무를 더 가져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교사로 바라보는 교장과 교감은 책상에 앉아 결재문서를 대충 들여다보고 클릭질하는 일 외에는 일이 없어보이기도 한다. 업무를 더 가져가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아이들과의 수업현장에 들어와서 함께 참여해주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한발짝 뒤로 물러서면 교장과 교감이 아이들과 수업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어보인다. 권위가 무너질까 두려워서 혹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수업을 할 자신이 없어서..

요즘의 교장과 교감에게

좋은 시절에 교사 못해보고, 좋은 시절에 교장, 교감 못해본 불쌍한 사람들

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권위로 교사들에게 명령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교사들이 요구하는대로 다 들어주면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질까 염려스러운 그런 자리, 교장과 교감이라는 자리가 그래보인다. 이 또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학교에서 교장과 교감과의 업무상 논의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장과 교감을 찾아가지 않는다. 예전엔 출근하면 꼭 들러서 인사하라고 명령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일도 없고 억지로 자리를 마련해서 교장과 교감이 부르거나 아니면 인사치례하러 찾아가지 않는 한 오다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정도,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로 가는 급식실에서 만나는 정도. 딱 그 뿐이다. 하루종일 교장과 교감 얼굴 한 번 못 보는 날들이 더 많다.

회식자리에 가면 또 어떤가?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이 서로 붙어앉아있을 뿐 교사들은 그 옆자리를 꺼려한다. 가장 늦게 온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놓고 가장 먼 자리부터 앉는 현상. 어렵지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 교장과 교감을 회의석상에서 동료들과 한 편이 되어 무턱대고 몰아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들에게 잘못했다고 뭐라 할 수 있으나 내 판단에 그들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경우가 있다.

민주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바꿔야한다.

가끔은 내가 그를 수도 있다. 바르게 보고자 하나 내가 보고있는 면과 상대방이 보고있는 면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함께 이야기나누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동양에서 바라보는 달 속엔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정겨운 모습이고 서양에서 바라보는 달 속엔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이 우주에서 하늘에 있는 달은 하나인데 어찌해서 그런 다른 모습의 달이 보여졌을까?

(이미지출처 : 다음 백과사전)

가끔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수도 있는 자세, 그런 자세가 필요한 요즘이다.

 

 

Posted by 좌충우돌 양돌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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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7.09.18 1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주주의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그 다름을 인정하지 못함으로써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과 같아야 내 편이라는 생각은 주관적이고 독선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