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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길 닿는대로

자전거로 즐기는 호반의 도시

읍면지역에 근무하다가 동지역으로 옮기고 나서 숨가쁘게 살아왔다.

젊은 엄마들의 거침없고 단순한 민원들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들과 함께 소통하며 가기 위해 참 많은 스트레스를 견뎌왔다. 가족과 쉼있는 휴가를 보 내고 싶어서 아들과 딸에게 제안했는데 가고싶은 대학이 생겼다며 삼수에 도전중인 딸아이는 수능공부로 바쁘다고 함께 보낼 수 없다했다. 하는 수 없이 아들과 우리 부부, 이렇게 셋만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사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수영을 하고 싶어서 풀장을 갖춘 풀빌라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만 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이곳저곳 찾다가 택한 곳은 춘천. 젊은 시절부터 경춘선을 타보는 것에 대한 로망 그리고 춘천의 공지천을 가보고 싶었던 소소한 꿈을 이루고 싶어 이제라도 가보자 했다.

아들이 여행경로를 계획하고 볼거리와 먹을 거리들을 찾아냈다.

쉼있는 여행을 위해 자동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휴가 첫째날, 용산에서 춘천행 ITX-청춘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조치원에서 무궁화열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18분정도 지연되기 시작하면서 예약된 기차를 놓칠까 조마조마했다. 용산에 내려서 점심을 먹어야하는데 점심먹는 것은 둘째치고 예약열차를 놓치면 다음 기차 역시 매진이라 낭패다.

아들에게 용산역에서 점심으로 먹을 간단한 먹거리를 사두라고 했다. 삼십분의 여유를 두고 예약한 건데 첫출발부터 심상치 않았다. 용산역 도착하자마자 내려서 계단을 뛰어올라가야했고 다시 춘천행 열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가자 열차가 들어왔다. 가까스로 열차에 들어서서 아들을 만나고 맥주와 점심거리를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도착한 춘천. 역앞에서 대기한 택시를 타고 첫번째 목적지 소양강처녀상을 외쳤다.

이삼분 운행하던 택시기사분이 내리란다.

'엥, 뭐지?'

소양강처녀상이 있는 곳이었다. 우린 왜 택시를 탔을까 한심스러워하며 아들이 계획한 첫번째 여행경로, 스카이워크 체험하러 길을 건넜다.

소양강처녀상은 대중가요 '소양강처녀'때문에 세워진 동상이다. 연신 '소양강처녀'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스카이워크 체험을 위해 입장료를 이천원씩 냈더니 시장상품권으로 이천원씩 돌려주었다. 무료인 셈이다.

스카이워크란 의암호에 유리판으로 다리를 설치하여 걷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랫쪽 호수물결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앞을 보고 걸으면 별 느낌이 없지만 아랫쪽을 바라보면 약간의 아찔함을 느끼는 곳이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눕듯이 앉아서 사진을 찍거나 누워서 아랫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스카이워크를 한바퀴 돌아보며 넓은 의암호의 물결들을 시원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반대편까지 연결되었다면 좀 더 스릴감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우리가 춘천을 찾은 첫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바람이 심상치않았다. 그렇다고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계획을 바꾸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택시를 탔던 어리석음을 또 범하게 될까싶기도 했고 자전거도로가 잘 갖추어져있는 것 같았기에 자전거대여소를 찾아 춘천역까지 걸어나갔다.

자전거대여소를 찾은 시각이 대여소영업을 마칠 즈음이라 1박2일 요금으로 2박3일 사용하게 해달라고 흥정을 해서 자전거를 세대 빌렸다. 맘좋은 대여소에 감사하며 자전거를 타고 우리의 숙소인 상상스테이 호텔까지 달렸다. 의암호주변을 둘러 조성된 자전거도로는 총길이 24Km라고 자전거대여소에서 말해줬다.  아쉽게도 아직 자전거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구간이 일부분 있기는 하지만 숙소까지 달리는 동안 의암호와 공지천의 시원스런 경관을 즐길 수 있었다.

유시민 작가가 즐겨찾는다는 에티오피아 전쟁기념관을 지나 공지천다리를 건너 황금비늘 테마거리로 들어섰다. 작가 이외수선생님의 작품 '황금비늘'에서 거리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거리에는 전구장식을 한 각양각색의 조형물들이 늘어서있었고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산책길과 건강하게 걸어가라고 만든 맨발 지압길, 연인들이 프로포즈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다양한 포토존 그리고 자전거도로가 마련되어있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달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나니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장을 보러 근처를 둘러보았으나 장을 볼만한 곳은 없었고 근처에 편의점 세 곳뿐이었다. 좀 더 시내에 가까이 들어가면 보일까싶어 걸어나갔으나 큰 규모의 마트나 시장은 찾지 못하고 공지숲 작은가게라는 예쁜 이름의 편의점에서 맥주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다시 환하게 불밝혀진 황금비늘 테마거리를 걷게 되었다. 화려한 불빛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로맨틱 춘천을 강조하면서도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불빛 조형물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눈길을 끄는 언덕 위 건물, 춘천 MBC가 보였다. 언덕 위로 올라가보니 요즘 공영방송의 몰락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MBC, 이 곳 춘천 MBC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지난 십년간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는데 앞장섰던 공영방송 MBC와 KBS.

MBC출신 최승호PD의 자백에 이어 올해 상영하기로 계획한 '공범자들'이 주인공들에 의한 영화상영금지 가처분신청때문에 상영일이 기약없이 늦춰지기도 했다. 시사회 초청받고 신청해뒀는데 시사회는 진행하려나...

다시 숙소로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빗줄기가 투두둑 투두둑.

밤새 내린 빗줄기는 이튿날 아침에도 여전히 굵게 쏟아졌다.

호수를 따라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로 했는데, 의암호에서 카누를 타기로 예약도 했는데 어찌해야하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일단 오전 자전거 라이딩은 포기해야 해야했지만 비가와도 카누는 운행한다고 하니 숙소에서 이십여분을 걸어가야했다. 자전거를 탔으면 좋았을 길을 말이다. 다행히 카누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의 반쪽은 카누가 곧 뒤집어질거라고 염려했으나 아들과 셋이 카누를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멀리 산중턱에 걸쳐진 운무를 바라보며 좀 더 멀리 가고 싶었으나 카누대여업체에서 정해진 경로로만 다니라고 하니 아쉬움은 좀 남는다. 그러나 우리 멋대로 카누를 타고 다니다 뒤집어지면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말을 잘 들어야지 ㅎㅎ

한시간 못되는 카누체험을 아쉽게 마치고 나서 일회용 우비를 얻어입고 숙소로 돌아와 또 컵라면과 햇반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우리 가족은 갈등했다. 오후에 자전거라이딩을 할 건지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닐 건지...

거금(?) 한대당 이만원을 지불하고 대여한 자전거를 타는 것에 우리 가족은 동의했다. 어차피 빗줄기는 줄어들지 않을 것 같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제대로 춘천을 즐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일회용 우비를 입고 자전거라이딩을 감행키로 했다.

앞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도 소양댐을 향해 달렸다. 맘에 드는 카페에 앉아 잠시 낭만을 즐기기도 했고 중간중간 공사중인 구간을 만나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진 편이라 달릴만 했다. 내 자전거가 아니라서 핸들과 안장이 몹시 불편했다. 잠깐 타는 것도 아니고 몇 시간을 타야하는 자전거라 여기저기 아팠지만 라이딩을 하는 내내 상쾌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소양댐을 3Km 앞둔 신북 숯불 닭갈비 거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저녁식사시간이 되기도 했고 숯불냄새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기도 했으며, 소양댐까지 가는 길에는 자전거도로는 고사하고 인도가 없다는 핑계로 더 이상 달리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려면 너무 어둡지 않게 상당한 시간이 확보되어야했기 때문.

늘 철판닭갈비를 먹어오다 처음으로 숯불닭갈비를 맛보게 되었다. 아들이 맛집이라고 찾아놓은 1,2,3순위를 지나 우리 가족이 들어가고 싶은 정감있는 식당을 찾아들어갔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럴 수도 있으나 정말 맛나게 먹었다. 마치 먹방을 찍듯이 우리 가족은 춘천의 대표음식을 맛보았다. 참숯으로 구워낸 숯불닭갈비와 막국수, 더덕구이까지.

춘천에서의 이틀째 , 의암호에서의 카누타기와 빗속 자전거라이딩, 그리고 숯불닭갈비와 막국수 먹방.

자리에서 일어서니 식당현관에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바라보는 의암호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안개의 감흥을 좀 더 느끼고 싶었지만 어둠이 내려오고 있는 터라 부진런히 페달을 밟아야하는 안타까움. 숙소를 눈앞에 두고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했으나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8시 조금 못되었다. 그냥 그대로 숙소에서 쓰러져 버렸다.

셋째날, 다행히 비는 그쳤다. 아니 오히려 햇살이 따가웠다. 청명한 가을날같기도 했다.

차라리 빗속의 라이딩이 멋진 추억을 남겨줬다.

여유있게 호텔 커피숍에서 의암호를 바라보며 브런치를 즐기고

춘천역으로 GO!Go!

자전거대여소에서 사장이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자전거를 즐기지 못했음을 걱정하기에 오히려 잘 탔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도심의 길거리를 라이딩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만하면 완벽한 춘천 즐기기가 아니었을까

돌아가는 ITX에서 뒤늦게 알게된 사실, 4호차와 5호차에 2층객석이 있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2층 객석에서 바깥풍광을 즐기며 오가는 눈이 호사를 했을 것을....

그래도 우리 가족은 아들의 효도관광(?)계획으로 춘천에서의 2박 3일 휴가, 날씨는 을씨년스러웠으나 나름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딸이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남지만...